재택근무의 외로움에 대하여
출퇴근이 사라지면 자유를 얻을 줄 알았다. 그런데 자유와 함께 외로움도 왔다.
오늘 목소리를 낸 적이 없다
저녁 7시, 노트북을 닫았다.
오늘 하루를 돌아본다. 슬랙으로 텍스트를 주고받았고, 줌 회의에서 화면을 공유했고, PR에 코멘트를 남겼다. 근데 실제로 목소리를 내어 대화한 적이 없었다. 줌 회의에서도 마이크 켠 건 "네, 알겠습니다" 두 번뿐이었다.
혼자 사는 1인 가구. 재택근무 3일 차. 사흘째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천국인 줄 알았다
재택근무가 처음 시작됐을 때는 천국인 줄 알았다.
출퇴근 2시간이 사라졌다. 아침에 여유롭게 커피를 내리고, 편한 옷을 입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면서 일했다. 점심은 직접 해 먹어도 되고 배달을 시켜도 됐다. 6시에 노트북 닫으면 바로 퇴근이었다.
6개월이 지나자 달라졌다.
자유가 일상이 되면 더 이상 자유가 아니다. 남은 건 루틴의 반복과 조용한 방이었다. (이 말 하면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 있는데, 진짜 그렇다.)
사무실이 싫었는데
사무실이 싫었던 이유를 나열하면 한 페이지가 넘는다.
출퇴근 지옥, 시끄러운 오픈 오피스, 불필요한 회의, 어색한 점심. 근데 사무실이 주던 것도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동료와 하는 30초짜리 잡담. 점심 메뉴를 고르면서 나누는 별 의미 없는 대화.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키보드 소리. 누군가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감각.
이것들은 너무 사소해서 있을 때는 몰랐다. 없어지고 나서야 빈자리가 느껴졌다.
슬랙은 대화가 아니다
슬랙으로 하루 종일 대화하잖아, 라고 할 수 있다.
근데 텍스트 커뮤니케이션과 대면 대화는 질적으로 다르다. 슬랙에는 표정이 없다. 눈맞춤이 없다. 웃음소리가 없다. 이모지는 감정의 대체재이지 감정 자체가 아니다.
그리고 슬랙 대화는 대부분 업무다. "이슈 확인했습니다." "배포 완료했습니다." 날씨 이야기, 주말 계획, 어제 본 드라마 같은 쓸데없는 대화가 사라졌다. 그 쓸데없음이 사실 관계를 유지시켜 주고 있었는데.
고양이를 입양했다
3개월 전에 고양이를 입양했다.
코드를 쓰다 고개를 돌리면 책상 위에서 자고 있다. 점심시간에 같이 논다. 화면에 올라오면 줌 회의 분위기가 좋아진다.
물론 고양이가 동료를 대체할 수는 없다. 코드 리뷰를 해주지도 않고, 기술 토론도 안 한다. 근데 같은 공간에 숨소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방의 온도가 달라진다.
외로움의 반대말은 사교가 아니라 존재감인 것 같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옆에 있다는 감각. 그것만으로 하루의 무게가 좀 가벼워진다.
내일은 카페에서 일해볼까
오늘도 노트북을 닫았다. 고양이가 무릎 위로 올라왔다.
내일은 카페에서 일해볼까. 아니면 동료한테 점심 약속을 잡아볼까. 재택근무의 자유는 소중하다. 다만 자유 안에도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혼자 있어봐야 알게 된다.
의도적으로 사회생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좀 피곤하긴 하다. 사무실에서는 자연스럽게 주어지던 건데. 근데 뭐, 해야지. 안 그러면 진짜 말을 잊어버릴 것 같다.
어쨌든 고양이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