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산책이 오후 업무에 미치는 영향
밥 먹고 바로 자리로 돌아가는 대신 15분만 걸어보면 어떨까. 직접 해본 한 달의 기록.
오후 2시, 모니터가 흐릿해진다
점심 먹고 자리에 앉으면 오후 2시쯤 모니터가 흐릿해지는 시간대가 있다.
위장은 소화에 바쁘고 뇌는 쉬고 싶어 한다. 코드가 눈에 안 들어온다. 같은 줄을 세 번 읽고 커서가 멈춘다. 커피를 한 잔 더 타온다. 카페인이 효과를 발휘하기까지 20분, 그마저도 3시 되면 또 졸리다.
한 달 전에 실험을 시작했다. 점심 먹고 15분 산책.
처음에는 귀찮았다
솔직히 처음에는 귀찮았다.
밥 먹고 남은 30분이 아깝잖아. 그 시간에 유튜브도 볼 수 있고, 슬랙도 확인할 수 있다. 굳이 밖에 나가서 걸어야 하나. 그래도 실험이니까 억지로 걸었다. 사무실 주변 블록을 한 바퀴. 편의점 지나고, 은행 지나고, 카페 지나고, 다시 사무실. 별거 없다.
근데 첫째 주에 느낀 건, 걷는 동안보다 걷고 난 뒤가 다르다는 거였다. 자리에 앉았을 때 모니터가 선명하다. 2시의 벽이 2시 30분쯤으로 밀린다. 30분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그 30분이 의외로 크다. (이게 플라시보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한 달쯤 지나니까
15분 산책이 습관이 되자 변화가 좀 쌓이기 시작했다.
오후 집중 시간이 체감상 1시간 정도 늘었다. 오후 회의에서 머리가 좀 더 맑았다. 근데 제일 신기한 건, 걷는 중에 오전에 막혀 있던 문제의 실마리가 떠오르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는 거다.
일부러 생각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아무 생각 없이 걸을 때, 뇌가 알아서 백그라운드 프로세스를 돌리는 느낌이다. 자판기에서 커피 뽑으면서 갑자기 "아 그 부분 이렇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고 떠올랐을 때의 그 쾌감.
"그 시간에 코드 한 줄 더 쓰지"
"점심에 산책 다녀올게요"라고 했을 때 동료 반응은 세 가지였다.
"나도 같이 가도 돼?" - 환영이다. 같이 걸으며 업무 외 이야기하는 것도 좋다.
"운동해?" - 아니, 그냥 걷는 거다. 15분 정도.
"그 시간에 코드 한 줄 더 쓰지" - 이게 가장 흔한 반응이었다.
근데 15분 아껴서 쓰는 코드 한 줄보다, 15분 걷고 와서 쓰는 코드 열 줄이 품질이 더 좋다. 시간을 아끼는 것과 시간을 잘 쓰는 건 다른 문제다. 뭐, 이건 남한테 설명하기 좀 어렵긴 하다.
계절을 알게 됐다
산책의 부수 효과가 있다.
계절을 느끼게 됐다. 사무실에서는 모르고 지나가는 것들. 벚꽃이 피었다가 지고, 은행잎이 노래졌다가 떨어지고, 첫눈이 내린 날 아침의 공기. 모니터 앞에서는 계절이 바뀌어도 모른다. 밖에 나가야 세상이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안다.
사소하다. 근데 이런 사소한 것들이 하루를 좀 더 살아있게 만든다. (이건 좀 감상적이긴 한데 진심이다.)
두 발
15분 산책은 거창하지 않다. 운동도 아니고 명상도 아니다. 그냥 걷는 거다. 하늘 보고, 바람 맞고, 몸을 움직이는 거. 이 사소한 행위가 오후 네 시간의 질을 바꾼다.
생산성을 높이겠다고 툴을 바꾸고, 방법론을 도입하고, 노트 앱을 옮겨 다니는데. 제일 확실한 생산성 도구는 의외로 단순하다.
두 발.
내일도 걸을 거다.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