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5 min read

서울 지하철 2호선 한 바퀴, 그리고 생각들

순환선을 타고 한 바퀴를 도는 동안, 서울이라는 도시와 그 안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할 일이 없어서 탔다

일요일 오후,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2호선을 한 바퀴 돌아보면 어떨까. 순환선이니까 어디서 타든 다시 돌아온다. 교통카드 찍고 합정역에서 올라탔다. 한 바퀴 대충 60분이라고 한다. 60분 동안 서울을 관통하는 여행이라고 하면 좀 거창한가.

역마다 사람이 다르다

홍대입구. 젊은 사람들이 우르르 내린다. 차 안의 평균 연령이 확 올라가는 게 느껴진다.

신촌. 대학생들이 탄다. 에어팟에서 음악이 새어 나오고, 누군가는 노트북을 펴고 과제를 하고 있다. 시청. 정장 입은 사람들이 탄다. 일요일인데도 출근인가. 표정이 평일이랑 다를 게 없다.

강남. 인파가 밀려든다. 좁은 좌석을 사이에 두고 미세한 영역 다툼이 벌어진다. 옆 사람 팔꿈치가 내 팔꿈치를 밀어낸다. 나도 안 밀린다. 이건 무의식적인 거다. (아마도.)

같은 열차인데 역마다 다른 도시 같다. 2호선은 선이 아니라 서울의 단면이다.

맞은편 사람들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을 슬쩍 본다.

할머니 한 분이 보따리를 안고 졸고 계신다. 옆에는 게임에 빠진 중학생. 그 옆에는 투명한 서류 봉투를 든 정장 차림의 남자. 서류 봉투에서 이력서가 살짝 보인다. 일요일에 면접이 있나 보다.

모두 같은 열차에 타고 있지만 각자의 시간을 살고 있다. 이 평범한 장면이 묘하게, 뭐라 해야 하지. 아름답다고 하면 좀 오글거리긴 한데, 그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건대입구에서 잠깐

건대입구에서 잠깐 내렸다.

플랫폼에 서서 열차가 떠나는 걸 봤다. 다음 열차 3분 뒤. 3분 동안 그냥 서 있었다. 지하철 특유의 바람이 분다. 따뜻하기도 하고 차갑기도 한 바람.

다음 열차에 탔다. 아까와 다른 사람들. 같은 노선인데 다른 세계다.

구의역을 지났다. 스크린도어 수리하다 사고로 세상을 떠난 청년이 있었던 곳이다. 잠시 고개를 숙였다. 이 열차가 굴러가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 그 사실이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다.

합정으로 돌아왔다

합정역에 도착했다. 62분 걸렸다.

아무 데도 가지 않았는데 어딘가를 다녀온 기분이다.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평소에 놓쳤던 것들을 좀 봤다. 멈춰 있던 생각이 다시 돌기 시작한 느낌이랄까.

가끔은 목적지 없이 이동하는 것도 좋겠다. 어디에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동하는 동안의 시간을 위해서.

2호선은 순환한다. 어디서 타든 결국 돌아온다. 인생도 그런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개찰구를 나섰다.

약간 건방진 감상이긴 하다. 62분짜리 철학치고는 나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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