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의 디지털 미니멀리즘
앱 50개, 탭 30개, 알림 100개. 디지털 도구에 둘러싸인 개발자가 비우기를 시작했다.
알림 82개
월요일 아침, 폰을 들었다.
슬랙 23개, 이메일 31개, 깃허브 12개, 트위터 8개, 기타 8개. 주말 이틀 동안 쌓인 알림이 82개다. 하나하나 확인한다. 30분이 지났다. 중요한 건 3개 정도였다. 나머지 79개는 읽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근데 읽지 않으면 빨간 배지가 안 사라지고, 배지가 있으면 신경이 쓰인다. 82개 중 3개를 찾기 위해 79개를 소비한 셈이다. 이게 뭔가 좀 이상하지 않나.
57개의 앱
개발자는 직업적으로 도구를 좋아한다.
새 에디터 확장, 새 터미널 앱, 새 노트 앱, 새 태스크 관리 도구. "생산성"이라는 이름 아래 도구를 끊임없이 추가한다. 내 맥북에 설치된 앱이 57개다. 이 중 매일 쓰는 건 7개.
나머지 50개는 "언젠가 쓸 것 같아서", "평이 좋아서", "한 번 써보려고" 깔아둔 것들이다. 이것들이 백그라운드에서 리소스를 잡아먹고, 알림을 보내고, 업데이트를 요구한다.
도구가 일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도구를 관리하는 게 일이 되어버렸다. (이건 좀 한심한 것 같기도 하다.)
비우기 시작
한 달 전부터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시도하고 있다.
규칙은 간단하다. 2주 동안 안 쓴 앱은 삭제한다. 알림은 메시지, 전화, 캘린더만 남긴다. 브라우저 탭은 5개 이하로 유지한다. 뉴스레터는 3개만 구독한다.
처음에는 불안했다. "이거 삭제해도 되나?" "나중에 필요하면 어쩌지?" 근데 삭제하고 일주일이 지나도 필요 없으면 처음부터 필요 없었던 거다. 57개였던 앱이 19개로 줄었다. 아무 문제가 없다.
슬랙 알림을 껐다
가장 큰 변화는 알림이었다.
슬랙 알림을 끄고, 30분마다 한 번씩 직접 확인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처음에는 뭔가를 놓칠까 불안했다. 근데 30분 안에 응답 안 해서 문제가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알림을 끄니까 깊은 집중의 시간이 생겼다. 30분이 아니라 1시간, 2시간 연속으로 코드에 몰입할 수 있었다. 원래 이렇게 집중할 수 있었는데, 알림이 그걸 쪼개고 있었다.
카카오톡 단톡방 알림도 껐다. 세상이 평화로워졌다. 이건 진짜다.
"이것이면 충분해"
선택지가 많으면 결정이 어려워지고, 결정 후에도 만족도가 낮아진다.
개발자의 도구 선택도 마찬가지다. VS Code 확장만 해도 수만 개다. 테마, 키맵, 린터, 포맷터. 최적의 조합을 찾으려다 반나절이 간다.
미니멀리즘의 핵심은 선택을 줄이는 거다. 충분히 좋은 도구를 정하고, 더 나은 것을 찾는 행위를 멈추는 것. "이것보다 나은 게 있을 거야"를 "이것이면 충분해"로 바꾸는 것.
근데 이게 개발자한테 제일 어렵다. 직업적으로 더 나은 것을 찾는 사람들이니까.
조용한 아침
앱이 줄고, 알림이 줄고, 탭이 줄었다.
화면이 깨끗해지니 머릿속도 깨끗해진 느낌이다. 물론 착각일 수 있다. 근데 확실한 건, 도구에 쓰던 에너지가 줄어들면서 본래 할 일에 쓸 에너지가 늘어났다는 거다.
디지털 미니멀리즘은 적게 쓰는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쓰는 거다. 모든 도구를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선택하지 않은 건 과감히 내려놓는 것.
알림이 안 울리는 조용한 아침. 이 고요함이 생산성이라는 걸, 시끄러운 시절에는 몰랐다.
오늘 알림은 7개. 전부 읽을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