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재택근무가 좋은 이유
창밖에 비가 내리고, 집에서 코딩하고, 커피가 있다. 이보다 완벽한 근무일이 있을까.
아침부터 비가 온다
눈을 떴는데 빗소리가 들렸다. 창밖을 보니 회색 하늘에서 비가 꽤 세게 내리고 있다. 보통이면 "아 우산 챙겨야 하나" 하고 귀찮아하겠지만, 오늘은 재택근무일이다.
이불 속에서 1분 더 있다가 일어났다. 출근 준비가 필요 없다. 세수하고, 커피 내리고, 책상 앞에 앉으면 된다. 이동 시간 0분. 우산 필요 없음.
밖에서 비가 쏟아지는데 나는 따뜻한 집 안에 있다는 사실. 이 안도감이 뭔지 설명하기 어렵다.
빗소리 + 코딩 = 최적의 조합
비가 오면 자연적인 백색소음이 생긴다.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가 일정하게 깔리면서 집중이 잘 된다. 노이즈 캔슬링을 안 써도 된다.
실제로 오늘 오전에 처리한 업무량이 평소보다 많았다. PR 3개 리뷰하고, 내 작업 1개 마무리하고, 버그 픽스 2건. 오전만에. 평소에는 PR 리뷰 2개 하면 점심이다.
(솔직히 빗소리 때문인지 그냥 컨디션이 좋았던 건지 구분은 안 된다.)
유튜브에 "비 오는 카페 ASMR" 같은 영상이 수십만 조회를 찍는 이유가 있다. 근데 실제 빗소리가 훨씬 낫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가짜 빗소리는 반복 패턴이 느껴지는데, 진짜 비는 불규칙하다. 그 불규칙함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점심을 대충 해먹었다
비가 오니까 배달도 귀찮고, 나가기도 귀찮다. 냉장고를 열었다. 계란 3개, 밥, 김치. 김치볶음밥을 해먹었다.
맛은 3점. 10점 만점에. 양파를 안 넣어서 심심하고, 기름을 너무 많이 넣어서 느끼했다. 근데 요리 과정 자체가 좋았다. 프라이팬 위에서 밥이 볶아지는 소리, 창밖 빗소리, 후드 돌아가는 소리. 이 조합이 묘하게 편안했다.
사무실에서 이 점심을 먹었으면 "뭐 이런 걸 먹어" 했을 텐데, 비 오는 날 집에서 먹으니까 "나름 운치 있는데"가 된다. 환경이 음식의 맛을 바꾼다.
오후에 잠깐 낮잠을 잤다
사실 이건 좀 찔린다.
오후 2시쯤, 밥 먹고 졸릴 때 "눈만 감을게" 하고 소파에 누웠다. 빗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다. 일어나보니 2시 43분. 43분이나 잤다.
재택의 어두운 면이다. 사무실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43분 낮잠. 근데 일어나서 작업하니까 머리가 맑았다. 그래서 이건 전략적 낮잠이었다고 합리화했다. 스페인에는 시에스타라는 문화도 있으니까. (이건 완전 억지 합리화다.)
비가 그쳐도 기분은 안 그쳤다
오후 4시쯤 비가 그쳤다. 창밖에 햇살이 잠깐 비치더니 다시 흐려졌다.
비가 그치니까 좀 아쉬웠다. 빗소리가 사라지니까 다시 냉장고 소리, 시계 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노캔을 꼈다.
6시에 노트북을 닫으면서 생각했다. 비 오는 날의 재택근무는 정말 최고다. 근데 이게 좋은 건 비가 매일 안 오니까일 수도 있다. 매일 비가 오면 지겹겠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재택근무일에 비가 오면 완벽하다.
날씨까지 컨트롤할 수는 없으니까, 그냥 비 오는 재택일을 감사히 여기는 수밖에.
다음 주 수요일 재택인데 일기예보에 비 온다고 되어 있다. 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