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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의존증 고백: 하루 4잔은 기본

커피 없이 코딩을 시작할 수 없게 된 사람의 솔직한 이야기.

아침 9시 17분의 의식

출근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코드 에디터 여는 게 아니다. 커피를 내리는 거다.

회사 탕비실 드립 머신 앞에서 내 머그컵을 놓고 버튼을 누르는 순간이 하루의 시작이다. 이 의식 없이는 업무를 시작할 수가 없다. 물리적으로 못 하는 게 아니라 심리적으로 준비가 안 된 느낌.

첫 잔은 블랙. 우유도 설탕도 안 넣는다. 쓴맛이 뇌를 깨우는 것 같다.

근데 생각해보면 카페인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하려면 20~30분은 걸린다고 한다. 그러면 커피 마시자마자 머리가 맑아지는 건 뭘까. 플라시보. 확실히 플라시보인데, 플라시보도 효과가 있으면 그게 효과 아닌가.

4잔의 타임라인

1잔: 오전 9시 20분. 출근 직후. 생존용. 2잔: 오전 11시 30분. 오전 작업 마무리 전. 집중 부스트. 3잔: 오후 2시 15분. 점심 먹고 졸릴 때. 이건 필수다. 4잔: 오후 4시 40분. 퇴근 전 마지막 스퍼트. 근데 이 시간에 마시면 밤에 잠이 안 올 수도 있다.

가끔 5잔째를 마실 때가 있다. 야근할 때. 근데 5잔부터는 각성이 아니라 손이 떨린다. 심장도 좀 빨라지는 것 같고. 그때는 "아 이건 아니다" 싶어서 물로 전환한다.

(근데 다음 날 또 4잔을 마신다.)

끊어보려고 했다

작년 11월에 카페인 디톡스를 시도했다. 3일간 커피를 안 마시는 챌린지.

1일차: 두통. 오전부터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카페인 금단 두통이라고 한다. 이게 진짜 있구나. 이부프로펜을 먹었다.

2일차: 두통은 줄었는데 졸음이 미쳤다. 오후 2시에 화장실에서 5분 동안 눈을 감았다. 자려고 간 건 아닌데 알람도 안 맞추고.

3일차: 포기했다. 정확히는 동료가 "너 오늘 왜 그래?"라고 해서 커피를 마셨다. 첫 모금의 그 느낌.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은 기분이었다.

3일도 못 버텼다. 의지의 문제인지, 신체의 문제인지.

커피 값이 월급의 몇 퍼센트인지

계산해봤다. 회사 탕비실 커피는 무료니까 그건 빼고, 외부에서 사먹는 커피만.

주 5일 중 평균 2일은 카페에서 산다. 아메리카노 4,800원. 가끔 라떼 5,500원. 주말에도 하루는 카페에 간다. 한 달 기준 약 52,400원.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데, 연간으로 환산하면 628,800원이다. 커피로 63만 원. 이걸 투자했으면 어쩌고 하는 생각은 안 한다. 어차피 안 끊을 거니까.

커피가 없는 미래

만약에 세상에서 커피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이런 쓸데없는 상상을 점심시간에 했다.

아마 개발자 생산성이 전세계적으로 37% 하락할 거다. 이건 내 뇌피셜이지만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커피가 없으면 실리콘밸리가 멈출 거라는 농담이 있는데, 농담이 아닐 수도 있다.

솔직히 커피를 끊는 건 당분간 계획에 없다. 의존인 건 알겠는데, 해롭다는 확신이 없다. 오히려 항산화 성분이 어쩌고 하는 연구도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 내가 보고 싶은 연구만 골라 보는 것도 의존의 증상일 수 있다.

내일도 9시 17분에 탕비실에 갈 거다. 머그컵을 놓고 버튼을 누를 거다. 그게 내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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