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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가 멘탈에 미치는 영향

번아웃 직전에 시작한 달리기가 멘탈에 어떤 변화를 줬는지

번아웃 직전이었다

올해 초에 프로젝트 3개가 동시에 돌아가면서 멘탈이 바닥을 찍었다. 일요일 밤마다 월요일이 두렵고, 코드 에디터 열면 한숨부터 나오고, 집중 시간이 15분을 못 넘겼다. 이러다 진짜 우울증 오겠다 싶었다.

상담을 받아볼까 했는데 예약이 3주 뒤였다. 그 3주를 그냥 버틸 수 없어서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운동화 하나 있으면 되니까 진입 장벽이 제일 낮았다.

처음엔 1km도 못 뛰었다

사실은 중학교 이후로 달리기를 안 했다. 첫날 한강 나가서 뛰었는데 800m 지점에서 걸었다. 1km 완주하는 데 8분 47초. 페이스고 뭐고 그냥 죽을 것 같았다. 옆에서 할머니가 나보다 빨리 걸어가는 걸 보면서 현타가 왔다.

근데 신기한 게, 그날 밤에 잠이 잘 왔다. 평소에는 이불 속에서 1시간씩 뒤척이며 내일 회의 걱정, 코드 리뷰 걱정을 하는데, 그날은 눕자마자 잠들었다.

주 3회를 목표로 잡았다

월수금 저녁 7시, 한강 둔치에서 30분. 처음 2주는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했다. 3주째부터 3km를 쉬지 않고 뛸 수 있게 됐고, 한 달 반째에 5km를 32분에 뛴다.

페이스가 빠른 건 아닌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러너스 하이라는 게 진짜 있다

3km 넘어가면 뭔가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 온다. 머리가 비워지는 느낌. 일하면서 꼬여있던 생각들이 풀리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한번은 API 설계 문제로 3일째 고민하던 게 뛰다가 갑자기 "아 이렇게 하면 되겠다" 하고 떠올랐다. (물론 매번 그런 건 아니다.)

엔돌핀인지 뭔지 모르겠는데, 달리고 나면 확실히 기분이 올라간다. 나쁜 기분 5점짜리가 7점으로 바뀌는 정도. 세상이 장밋빛으로 보이진 않지만 견딜 만해진다.

실패한 날도 많다

2개월간 빠진 날이 11일이다. 비 오는 날 3번, 야근 4번, 그냥 귀찮아서 4번. "귀찮아서" 안 간 날 다음 날은 항상 기분이 안 좋았다. 근데 그렇다고 억지로 가면 그것도 스트레스다.

한번은 비 오는 날 "그래도 가야지" 하고 나갔다가 미끄러져서 팔꿈치를 까졌다. 운동하러 갔다가 다치면 본말전도다. 그 뒤로 비 오면 안 간다.

달리기가 코딩에 미치는 영향

이건 내 경험이라 일반화하긴 어려운데, 달리기한 날과 안 한 날의 오후 생산성 차이가 체감된다. 특히 복잡한 로직 짤 때 인내심이 다르다. 달리기 안 한 날은 디버깅 30분이면 짜증 나는데, 한 날은 한 시간도 버틸 수 있다.

수면의 질이 올라간 게 핵심인 것 같다. 잠을 잘 자니까 다음 날 컨디션이 좋고, 컨디션이 좋으니까 코딩이 잘 되고. 선순환이다.

지금 상태

달리기 시작한 지 4개월째. 이제 10km도 뛴다. 페이스는 km당 6분 20초 정도. 빠르진 않다. 근데 빠른 게 목표가 아니라 계속하는 게 목표다.

번아웃은? 솔직히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다. 여전히 월요일 아침은 힘들고 프로젝트 스트레스도 있다. 근데 바닥을 찍었던 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나아졌다. 달리기만의 효과인지, 시간이 지나서 나아진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근데 그걸 굳이 분리할 필요가 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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