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등산 루틴이 가져다준 변화
모니터 앞에서만 살던 개발자가 매주 산에 다니기 시작한 8개월의 기록
허리가 보낸 경고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는데 허리에서 "뚝" 소리가 났다. 아프지는 않았는데 무서웠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말했다. "운동 안 하시죠? 코어 근육이 약해요." 주 5일 하루 8시간 이상 앉아 있는 생활. 퇴근하면 소파에 앉고, 주말에도 노트북 앞에 앉는다. 일어나 있는 시간의 80%를 앉아서 보내고 있었다.
헬스장을 등록했다. 3주 만에 안 갔다. 러닝머신이 지루해서 못 참겠다. 그때 아버지가 "같이 등산 갈래?" 하셨다.
첫 등산: 북한산이 이렇게 높았나
북한산 백운대 코스. 난이도 중상이라고 했다. "2시간이면 올라간다"고 하셨는데 2시간 47분이 걸렸다. 중간에 세 번 쉬었다. 다리가 떨렸고 숨이 차서 말을 못 했다.
근데 정상에 올라갔을 때 느낌이 이상했다. 서울이 다 보였다. 바람이 불었다. 땀이 식으면서 "아 이게 운동이구나" 싶었다. 헬스장에서는 못 느끼는 종류의 성취감이 있었다.
다음 주에 또 갔다. 그다음 주에도. 이제 8개월째 매주 가고 있다.
8개월 동안의 산
| 횟수 | 산 | 비고 |
|---|---|---|
| 1-4회 | 북한산 | 아버지와 함께 |
| 5-8회 | 관악산 | 집에서 가까운 산으로 전환 |
| 9-15회 | 관악산, 도봉산 | 혼자 다니기 시작 |
| 16-현재 | 다양 (관악산, 수락산, 아차산 등) | 주 1회 고정 |
현재까지 총 34회. 빠진 주가 있으니까 순수 주말 기준으로는 8개월 중 34주 등산. 비가 온 주와 몸이 아픈 주를 빼면 거의 매주 간 셈이다.
몸이 달라졌다
3개월 차에 같은 코스를 올라가는데 쉬는 횟수가 세 번에서 한 번으로 줄었다. 시간도 2시간 47분에서 2시간 8분으로. 다리 근육이 생겼다. 뱃살이 좀 줄었다. (정확히는 몸무게가 73kg에서 70.2kg으로.)
근데 제일 큰 변화는 허리다. "뚝" 소리가 안 난다. 병원을 다시 갔더니 의사가 "코어가 좀 좋아졌네요" 했다. 등산이 코어 운동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오르막에서 몸의 중심을 잡으려면 코어를 계속 쓰게 된다.
정신적으로 달라진 것
이게 좀 예상 밖이었다. 등산하는 동안은 코드를 생각 안 한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숨이 차서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특히 오르막 구간.
근데 하산할 때는 머리가 맑아진다. 금요일에 해결 안 되던 버그가 토요일 하산길에 "아, 그거 이렇게 하면 되는데" 하고 떠오른 적이 3번 있다. 샤워할 때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거랑 비슷한 원리인 것 같다. 뇌가 리셋되는 느낌.
일요일 컨디션이 확실히 좋아졌다. 토요일에 산을 다녀오면 일요일이 길게 느껴진다. 안 가면 토요일 일요일이 붙어서 순식간에 지나간다.
장비에 돈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운동화에 면 티셔츠로 갔다. 지금 장비 목록:
- 등산화: 149,000원
- 속건 티셔츠 x 3: 87,000원
- 등산 바지: 65,000원
- 배낭 (20L): 53,000원
- 스틱: 32,000원
- 기타 (모자, 선크림 등): 28,000원
총 414,000원. 처음 예산은 "10만 원 이내"였다. 왜 항상 예산의 4배를 쓰는 걸까. (등산화를 싸게 사면 발이 아프다는 걸 경험으로 배웠다. 처음에 산 39,000원짜리 등산화로 내려오다가 발톱이 까맣게 변했다.)
실패한 부분
주중에도 운동을 하려고 퇴근 후 러닝을 시도했는데 2주 만에 포기했다. 퇴근 후에 운동할 에너지가 나한테는 없다. 등산은 주말 오전에 하니까 가능한 거다.
그리고 혼자 등산의 단점이 있다. 안전 문제. 혼자 올라가다가 발을 삐끗한 적이 있다. 다행히 가벼운 염좌로 끝났는데 만약 심했으면 혼자서 어떻게 내려왔을지. 지금은 등산 앱에 위치 공유 기능을 켜놓고, 비상 연락처를 등록해놨다.
이걸 누구한테 추천할 수 있나
모니터 앞에서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사람. 헬스장에서 러닝머신 3주 만에 포기한 사람. 이런 사람한테 등산은 좋은 선택지다. 근데 처음부터 어려운 산을 가면 안 된다. 아차산 같은 쉬운 산부터. 1시간이면 올라가니까.
내일이 토요일이다. 내일은 수락산을 갈 예정이다. 날씨가 맑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