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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오피스가 집중력을 죽이는 이유

탁 트인 사무실이 소통을 늘려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떨까.

"잠깐, 이거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코드에 몰입한 지 20분쯤 됐을까.

머릿속에서 함수의 흐름이 그려지기 시작한 그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잠깐, 이거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고개를 돌린다. 질문에 답한다. 2분이면 끝이다.

다시 모니터를 본다. 아까 뭐 하고 있었지? 함수의 흐름이 끊어졌다. 다시 맥락을 잡는 데 5분. 합치면 7분이 날아갔다. 하루에 이런 일이 열 번이면 70분이다.

오픈 오피스에서 일하는 개발자의 하루에서 최소 한 시간은 "다시 집중하기"에 쓰인다. 이건 체감이 아니라 매일 경험하는 현실이다.

벽을 허물면 소통이 늘어날 거라고

오픈 오피스는 좋은 의도로 시작됐다.

벽을 허물면 소통이 늘어날 거라 믿었다.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오갈 거라 기대했다. 실리콘밸리의 멋진 사무실 사진이 이 트렌드를 부채질했다. 넓은 공간, 긴 테이블, 빈백 소파.

근데 현실은 좀 달랐다. 오픈 오피스로 바뀌고 나서 대면 소통이 오히려 줄었다. 대신 슬랙이 늘었다. 옆 사람한테 말하면 주변 사람 모두가 듣게 되니까, 차라리 메시지를 보내는 게 편한 거다.

벽을 허물었는데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벽을 세우기 시작한 거다.

15분의 무게

개발자한테 집중이 깨지는 건 단순한 불편이 아니다.

프로그래밍은 여러 레이어의 추상화를 머릿속에 동시에 올려두는 작업이다. 변수의 상태, 함수의 호출 순서, 데이터의 흐름. 이것들이 머릿속에 올라가는 데 15~20분이 걸린다. 한 번 깨지면 다시 15분. 이걸 컨텍스트 스위칭 비용이라 한다.

컴퓨터의 컨텍스트 스위칭은 마이크로초 단위인데, 인간의 그것은 분 단위다. 하루에 네 번만 방해받아도 한 시간 반이 증발한다. (이건 과장이 아니라 체감 그대로다.)

20만 원짜리 방어막

오픈 오피스 개발자의 필수템이 있다.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

음악을 듣는 게 아니다. 소음을 차단하는 거다. 헤드폰을 끼고 있으면 "지금 말 걸지 마세요"라는 신호가 된다. 물리적 벽 대신 음향적 벽을 세우는 것이다.

20만 원짜리 헤드폰으로 수천만 원짜리 사무실 설계의 문제를 개인이 해결하고 있다. 시스템의 실패를 개인의 장비로 메우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선택의 자유가 있으면

모두 개인실에 넣을 수는 없다.

타협점이 있다면 선택의 자유가 아닐까. 집중이 필요할 때 들어갈 수 있는 조용한 공간. 소통이 필요할 때 모일 수 있는 열린 공간. 둘 다 있어야 한다.

"집중 시간" 제도도 의미 있다. 오전 10시~12시는 슬랙 알림을 끄고, 말을 걸지 않는 시간. 간단한 규칙인데 효과가 크다. 2시간의 연속된 집중이 보장되는 것만으로도 하루 전체가 달라진다.

익숙해졌다는 게 좀 슬프다

오늘도 헤드폰을 끼고 앉는다. 노이즈 캔슬링을 최대로 올린다.

20분쯤 되면 다시 몰입이 올 거다. 그리고 누군가 어깨를 두드리겠지.

"잠깐, 이거 하나만."

괜찮다. 익숙하니까. 다만 익숙해져야 한다는 사실이 좀 슬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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