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식물을 키우는 개발자
모니터 옆 스킨답서스에서 시작해 사무실 정글을 만든 이야기
모니터 옆에 화분 하나
입사 첫 달에 선배가 스킨답서스 한 화분을 줬다. "죽이기 어려운 식물이야"라는 말과 함께. 모니터 옆에 놨다. 일주일에 한 번 물을 줬다. 그게 시작이었다.
3개월 뒤에 내 책상에 화분이 5개가 됐다. 스킨답서스, 산세베리아, 몬스테라 미니, 피토니아, 다육이. 주변 동료들이 "식물 개발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사실 공식 호칭은 프론트엔드 개발자인데.)
코딩하다 막히면 식물을 본다
이게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데, 코드가 안 풀릴 때 식물을 보면 머리가 환기된다. 모니터를 8시간 넘게 보다가 초록색 잎을 보면 눈이 쉬는 느낌이 있다.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근데 경험적으로 15초 정도 식물을 보고 나면 다시 코드를 볼 때 집중이 좀 더 잘 된다.
일주일에 한 번 물을 주는 시간이 일종의 마이크로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5분 동안 흙 상태를 확인하고, 잎을 닦고, 위치를 조정한다. 이 5분이 포모도로 테크닉의 휴식 시간보다 효과적이라고 느낀다. 뭔가를 돌보는 행위 자체에 리프레시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근데 몬스테라는 죽였다
몬스테라 미니가 한 달 만에 노랗게 변했다. 원인은 과습과 부족한 햇빛. 사무실 내 자리가 창문에서 멀어서 자연광이 거의 안 들어온다. 스킨답서스나 산세베리아는 저광에서도 괜찮은데, 몬스테라는 빛이 필요하다.
이걸 몰라서 같은 조건에 뒀다가 죽인 거다. 찾아보니까 사무실용 식물은 "저광 + 건조에 강한" 종을 골라야 한다. 내 실수였다. 2만 원짜리 몬스테라를 죽인 게 아깝다기보다, 생명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게 좀 미안했다.
사무실 정글이 되기까지
사무실에서 식물을 키우니까 동료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하나 키워볼까?" 하는 사람이 3명 있었다. 각각 다육이, 스킨답서스, 떡갈고무나무를 들여왔다. 그중 떡갈고무나무가 잘 자라서 3개월 만에 키가 60cm가 됐다. 팀 영역이 은근 초록초록해졌다.
문제가 하나 있었다. 휴가 기간. 2주 동안 사무실에 아무도 없으면 물을 못 준다. 첫 번째 휴가 때 2주 만에 돌아왔더니 피토니아가 시들어 있었다. 그 이후로 긴 휴가 전에는 화분을 물받이에 담가놓거나, 출근하는 다른 팀 동료한테 물주기를 부탁한다. (슬랙에 "식물 돌봐주실 분"이라고 올리면 의외로 응답이 빠르다.)
추천 사무실 식물 Top 3
1년 넘게 사무실에서 키워본 결과, 초보한테 추천하는 건 딱 세 가지다. 스킨답서스: 죽이기 진짜 어렵다. 2주에 한 번 물 줘도 살아남는다. 산세베리아: 공기 정화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체감은 못 했다. 근데 관리가 쉬워서 좋다. 한 달에 한 번 물 줘도 된다. 금전수(ZZ Plant): 이름이 "돈 들어오는 나무"라서 인기 있다. 저광에 강하고 물을 자주 안 줘도 된다.
몬스테라, 아레카야자 같은 건 사무실에서 쓰지 마라. 빛이 부족한 사무실에서는 거의 확실히 죽는다. 나처럼 학습비를 내고 싶지 않으면.
식물이 가르쳐준 것
코드는 내가 원하는 대로 동작한다. (대부분은.) 근데 식물은 내 맘대로 안 된다. 물을 줘도 죽고, 안 줘도 죽고. 각 식물마다 필요한 조건이 다르다. 이걸 파악하고 맞춰줘야 한다. 어떻게 보면 팀원 관리랑 비슷하다. 각자 필요한 게 다르고, 획일적으로 대하면 안 되는 거다. 근데 이건 좀 억지 비유인 것 같으니까 여기서 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