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자리에서 키보드를 세게 치는 동료
매일 8시간 옆에서 기계식 키보드 타건 소리를 듣는 사람의 이야기
첫날부터 알아챘다
입사 첫날, 내 자리 옆에 앉은 동료가 키보드를 치기 시작했을 때 "이거 진짜인가" 싶었다. 기계식 키보드. 청축. 사무실에서 청축을. 타닥타닥이 아니라 딸깍딸깍. 마치 옆에서 캐스터네츠를 연주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개발자니까 기계식 쓸 수 있지"라고 이해하려 했다. 나도 집에서는 적축을 쓰니까. 근데 청축은 레벨이 다르다. 소리가 다른 층까지 들릴 것 같은 수준이다.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2주 동안 고민했다. "키보드 소리가 좀 신경 쓰여요"라고 말하면 될 일이다. 근데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선배한테 그런 말을 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 회사 문화에서 "선배의 물건에 대해 뭐라 하기"는 상당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게다가 그 동료는 정말 좋은 사람이다. 내가 모르는 거 물어보면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코드 리뷰도 꼼꼼하게 해준다. 키보드 소리 때문에 관계가 어색해지는 게 더 무섭다.
노이즈 캔슬링이라는 해결책
에어팟 프로를 꺼내 들었다. 노이즈 캔슬링을 켜면 키보드 소리가 70% 정도 줄어든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특히 엔터를 칠 때 나는 "딱!" 소리는 노이즈 캔슬링을 뚫고 들어온다. (그 동료는 엔터를 유독 세게 친다. 마치 코드가 완성될 때마다 기쁨을 표현하는 것 같다.)
근데 8시간 내내 이어폰을 끼고 있으면 귀가 아프다. 4시간쯤 되면 귀 안쪽이 눌리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2주간 매일 착용했더니 왼쪽 귀에 가벼운 통증이 생겼다. 이비인후과까지는 안 갔지만 좀 걱정됐다.
오버이어 헤드셋을 사야 하나 고민했는데, 사무실에서 헤드셋은 "말 걸지 마세요" 신호라서 좀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귀마개를 끼면 누가 말 걸 때 못 듣고. 이 문제의 해결책이 왜 다 내 귀에 뭔가를 끼우는 방향인 건지.
다른 팀원들은 괜찮은 건가
어느 날 점심시간에 넌지시 물어봤다. "우리 팀 사무실이 좀 시끄럽지 않아?" 다른 팀원이 웃으면서 말했다. "아, 그거요? 1년 되니까 안 들려요." 적응이 되는 건가. 나는 아직 3개월인데 적응이 안 된다.
근데 또 다른 팀원은 "사실 나도 좀 신경 쓰여"라고 했다. 소수파가 나 혼자는 아니었다. 이 동료는 귀마개를 쓰고 있었다고 한다. 2개월 동안. 나만 몰랐다.
재미있는 건, 소리를 내는 본인은 전혀 의식을 못 한다는 거다. 자기 타건 소리에 익숙해져 있으니까. 한 번은 옆에서 녹음해봤다. 78dB. 찾아보니 일반 대화 수준이 60dB이고, 78dB은 진공청소기 수준이다. 사무실에서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던 거다.
결국 말을 했다
3개월째 되는 날, 회식 자리에서 약간의 용기(와 약간의 소주)를 빌려서 말을 꺼냈다. "형, 키보드 소리가 좀 커서... 혹시 링 달아보시는 건 어때요?"
예상과 달리 반응이 좋았다. "아 미안, 집에서도 와이프가 시끄럽다고 하는데 ㅋㅋ 링 사볼게." 다음 주에 진짜로 링을 달고 왔다. 소리가 한 40% 정도 줄었다. 완전히 조용해진 건 아닌데, 참을 만한 수준이 됐다.
근데 한 달 뒤에 링이 빠진 키 몇 개가 있는 것 같았다. 소리가 슬슬 다시 커지고 있다. 말해야 하나. 또 같은 고민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2주 안에 말하기로 했다. 성장이다.)
이제는 좀 그립다
재택근무하는 날에는 옆자리가 조용하다. 이상하게 그 타건 소리가 살짝 그립다. 사무실의 생동감 같은 거랄까. 혼자 집에서 일하면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집중이 안 될 때가 있다.
결국 환경 소음 앱을 켜서 "사무실 소리"를 틀어놓게 됐다. (여기에 키보드 타건 소리도 포함되어 있다. 인생이란.)
아무튼 고민이 있으면 일찍 말하는 게 답이다. 3개월 혼자 끙끙댈 필요가 없었다. 말하면 대부분 해결된다. 근데 그 "말하기"가 어려운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