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5 min read

야근하고 돌아오는 새벽 택시 안에서

새벽 2시, 택시 뒷좌석에서 바라보는 서울은 낮과는 다른 도시 같다.

롤백 두 번, 핫픽스 세 번

배포가 늦어졌다. 롤백이 두 번, 핫픽스가 세 번. "수고하셨습니다" 슬랙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노트북을 닫고 사무실을 나왔다. 새벽 2시. 거리에 사람이 없다.

택시를 잡았다. 기사님이 행선지를 묻는다. 주소를 말하고 나니까 그제야 피로가 쏟아진다. 아, 진짜 많이 지쳤구나.

창밖을 봤다. 서울은 새벽에도 안 꺼진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42분

새벽 택시 뒷좌석은 묘한 공간이다.

회사도 아니고 집도 아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 지대. 슬랙 알림은 멈췄고, 아내는 이미 잠들었을 것이다. 이 잠깐 동안 나는 아무 역할도 아니다. 개발자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고, 그냥 뒷좌석에 앉아 있는 피곤한 사람.

내비게이션에 집 주소가 떠 있다. 도착 예정 42분. 이 42분이 하루 중 가장 솔직한 시간인 것 같다. 상사 앞에서 괜찮은 척 안 해도 되고, 집에서 안 피곤한 척 안 해도 되는. (이 시간이 좋다고 하면 좀 이상한 건가.)

라디오에서 사연이 나온다

기사님이 라디오를 틀어놨다. 심야 라디오.

"남자친구가 매일 야근이래요. 만날 시간이 없어요."

쓴웃음이 났다. 저 사연의 남자친구가 지금 내 옆 차선 택시에 타고 있을 수도 있겠다.

배포일은 법정 근로시간 같은 걸 비웃듯이 새벽까지 이어진다. 다들 알고 있고, 다들 그러려니 한다.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진짜 어쩔 수 없는 건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편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때 택시 창문 밖으로

강남대로를 달린다. 낮에는 사람으로 가득한 이 도로가 텅 비어 있다.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뀌어도 차가 없으니 의미가 없다. 편의점 불빛만 켜져 있다. 안에 알바생이 보인다. 저 사람도 새벽을 일하고 있구나.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모른다. 택시 기사, 편의점 알바, 야근 귀가자, 새벽 배송 기사. 보이지 않는 연대랄까. 아무도 의식하지 않지만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게 묘하게 위안이 된다.

기사님이 백미러로 본다

"이 시간에 퇴근이세요?"

네, 그렇다고 했다.

"IT 쪽이죠? 제가 태워보면 알아요. 이 시간에 강남에서 타는 분들 대부분."

기사님도 밤새 운전한다. 나도 밤새 코드를 썼다. 서로의 야근을 소비하면서 새벽 서울을 공유하고 있다. 뭔가 동질감 같은 게 느껴졌는데, 아마 피로 때문에 감상적이 된 걸 거다.

현관문 앞

미터기가 멈추고 법인카드를 찍었다.

현관문을 열면 조용한 어둠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신발 벗고, 샤워하고, 침대에 누우면 내일 아침 9시 반 출근이 기다린다.

오늘 밤 고친 버그는 내일이면 아무도 기억 안 할 거다. 장애 리포트 한 줄로 요약될 뿐이다. 야근의 가장 슬픈 부분은 피로가 아니라 그 시간이 기억되지 않는다는 거 아닐까.

택시에서 내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은 안 보인다. 서울이니까. 근데 어딘가에 있긴 하겠지.

어쨌든 집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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