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5 min read

알림 불안증: 빨간 동그라미의 압박

앱 아이콘 위의 빨간 숫자가 0이 아니면 불안한 사람의 고백.

빨간 배지가 147개

핸드폰 홈 화면을 보면 빨간 동그라미가 가득하다. 슬랙 23개, 이메일 87개, 카카오톡 14개, 그 외 앱들까지 합치면 147개. 숫자를 볼 때마다 심장이 약간 빨라진다. 근거 없는 불안감.

이 빨간 배지를 전부 없애야 마음이 편하다. 내용이 중요한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숫자가 0이면 된다. 그래서 슬랙은 다 읽음 처리하고, 이메일은 전체 선택해서 읽음 표시를 누르고, 카톡은 일일이 들어가서 확인한다.

이게 정상인지 모르겠다.

알림을 다 끄면 되잖아

맞다. 논리적으로는 그렇다. 실제로 한번 전부 끈 적이 있다. 모든 앱의 알림을 off. 배지도 off. 소리도 off.

3시간 만에 다시 켰다.

왜냐하면 "혹시 중요한 걸 놓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3시간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알림을 끄면 알림이 없는 게 아니라, 알림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상태가 되는 거다. 그게 더 불안했다.

(이건 완전히 파블로프의 개 상태 아닌가.)

FOMO인 걸까

근데 생각해보면 알림 147개 중 진짜 즉시 확인이 필요한 건 2~3개 정도다. 나머지는 마케팅 이메일, 동료의 잡담 슬랙, 단톡방 밈 공유 같은 것들.

진짜 급한 건 전화가 온다. 알림은 거의 전부가 "급하진 않은데 나중에 봐야 할 것들"이다. 근데 이 "나중에"가 쌓이면 빨간 숫자가 커지고, 숫자가 커지면 불안해지고, 불안해지면 다 확인하고, 확인하면 시간이 날아간다.

어제 슬랙 알림 전부 확인하는 데 걸린 시간: 38분. 그중 내가 액션을 취해야 했던 건 3개. 나머지 20개는 읽기만 한 거다. 38분을 써서 3건을 처리한 셈이다.

배지 숫자의 심리학

빨간 색은 경고의 색이다. 빨간 불, 빨간 사이렌, 빨간 X. 뇌가 빨간 색을 보면 "위험! 주의!" 신호를 보낸다. 앱 디자이너들이 이걸 모를 리 없다.

알림 배지가 파란색이었으면 이렇게 불안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근데 파란색이면 아무도 안 보겠지. 그러니까 앱 입장에서는 빨간색이 맞다. 사용자를 끌어들여야 하니까.

결국 나는 앱 디자이너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는 거다. 147개의 빨간 배지에 조종당하면서.

나만의 타협안

완전히 끌 수는 없으니까 타협을 했다.

슬랙은 DM과 멘션만 알림. 채널은 배지만 끔. 이메일은 하루 3번만 확인 (아침, 점심 후, 퇴근 전). 카톡은... 아직 못 건드렸다. 한국에서 카톡 알림 끄는 건 사회적 죽음이니까.

이렇게 했더니 배지가 147개에서 12개로 줄었다. 근데 12개도 신경 쓰인다. 0이 아니면 불안한 건 여전하다.

솔직히 이건 알림의 문제가 아니라 내 성격의 문제인 것 같다. 완료되지 않은 뭔가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불편한 거다. 할일 목록에 체크 안 된 항목이 있으면 잠이 안 오는 것처럼.

치료가 필요한 건지, 그냥 성향인 건지. 그 경계가 모호하다.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