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5 min read

일요일 밤의 공포: 개발자 에디션

일요일 밤만 되면 찾아오는 불안감,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일요일 저녁 7시 23분

넷플릭스 보다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내일 아침 스탠드업 미팅에서 뭐라고 말하지? 금요일에 끝내겠다고 했던 API 연동, 사실 절반도 못 했다. 에러가 나는데 원인을 아직 못 찾았다. 월요일 아침에 "진행 중입니다"라고 하면 시니어 눈빛이 어떨지 상상이 된다.

이 감정이 영어로 "Sunday Scaries"라고 불린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일요일 저녁에 찾아오는 막연한 불안감. 근데 개발자 버전은 좀 특수하다.

개발자한테 일요일 밤이 특히 괴로운 이유

첫째, 작업이 "끝"이 명확하지 않다. 영업 직군은 계약서 사인하면 끝이다. 근데 개발은? "이 기능 다 됐어요?" "네... 근데 엣지 케이스가 좀..." "그럼 아직 안 된 거 아닌가요?" 이 대화가 두렵다.

둘째, 금요일에 못 한 걸 주말에 '조금만' 하려다 결국 안 한 죄책감. 토요일 아침에 노트북 열었다가 30분 만에 닫고, "내일 해야지" 하다가 일요일에도 안 했다. 이 미완의 죄책감이 밤에 몰려온다.

셋째, 월요일 아침 스탠드업이 심판대처럼 느껴진다. (사실 아무도 신경 안 쓰는데 내 머릿속에서만 대법정이 열린다.)

선배가 해준 말

3년 차 때 팀 리드한테 술자리에서 털어놓은 적 있다. "일요일 밤에 불안해서 잠이 안 와요." 그 사람이 웃으면서 이랬다. "나도 그래. 7년째."

그 말이 위로가 됐다. 해결은 안 됐지만, 나만 약한 게 아니라는 거.

근데 솔직히 그 선배는 결국 번아웃으로 회사를 그만뒀다. 7년간 매주 일요일에 불안했다는 건 그게 정상이 아니라 시스템이 잘못된 거였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시도해본 것들

금요일 퇴근 전 15분 정리 - 다음 주 월요일에 뭘 할지 노션에 3줄만 적어놓는다. "API 연동 에러 디버깅, 재현 조건: 유저 토큰 만료 시." 이렇게 구체적으로 적어두면 일요일 밤에 "내일 뭘 해야 하지?" 불안이 좀 줄었다. 완전히 없어지진 않는다. 한 37% 정도?

토요일에 절대 코드 안 보기 - 이건 규칙으로 정했다. "조금만 보자"의 함정에 빠지면 주말 전체가 반일근무가 된다. 차라리 아예 안 보면 뇌가 포기한다. (솔직히 3번에 한 번은 규칙을 어긴다.)

일요일 밤 루틴 - 10시에 넷플릭스 끄고, 내일 입을 옷 꺼놓고, 아침 알람 맞추고 잔다. 사소한 결정을 미리 해두면 머리가 좀 편하다.

근데 진짜 해결책은 따로 있다

이 모든 건 대증치료다. 진짜 원인은 일이 나를 정의한다고 느끼는 것. "이 기능 못 끝냈어 = 나는 무능해" 이 등식이 머릿속에 있는 한, 일요일 밤은 계속 괴롭다.

아직 이 등식을 완전히 깨지 못했다. 다만 예전보다 빈도가 줄었다. 월요일 스탠드업에서 "못 끝냈습니다. 이런 이유로 막혀 있어서, 이렇게 풀 계획입니다"라고 말하는 게 "진행 중입니다"보다 훨씬 속이 편하다는 걸 배웠다.

오늘도 일요일이다. 이 글 쓰면서 살짝 불안하다. 내일 PR 리뷰 3개가 밀려있다. 근데 뭐, 안 죽는다.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