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즈 캔슬링 중독인 것 같다
에어팟 프로 없이는 못 살게 됐다. 조용함에 중독되면 일상이 시끄러워진다.
시작은 사무실 소음이었다
오픈 오피스에서 일하면 소음이 끊이질 않는다. 옆자리 통화 소리, 뒤에서 웃는 소리, 멀리서 들리는 커피 머신 소리. 원래 다 그러려니 했는데, 어느 날 에어팟 프로를 사고 나서 세상이 바뀌었다.
노이즈 캔슬링을 켜는 순간, 세상이 뮤트가 된다. 처음에는 좀 무서웠다. 진짜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귀가 먹은 줄 알았다. 근데 3분 지나니까 적응됐고, 코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날 생산성이 체감 1.5배였다. 그게 시작이었다.
언제부터 이상해진 걸까
처음에는 사무실에서만 썼다. 합리적인 사용이었다.
그다음 출퇴근 지하철에서 쓰기 시작했다. 이것도 이해 가능하다. 지하철 소음이 87데시벨이라고 하니까.
근데 이제는 집에서도 쓴다. 혼자 사는 집인데. 냉장고 소리, 시계 소리, 바깥 차 소리. 이것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 거다.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이건 좀 아닌 것 같았는데 이미 습관이 됐다.)
산책할 때도 쓴다. 음악도 안 틀고 노이즈 캔슬링만 켠다. 바람 소리만 약간 들리는 조용한 세상을 걸어다닌다.
문제가 생겼다
가장 큰 문제는 노캔 없이는 집중을 못 하게 된 거다.
회의실에서 노캔을 뺐을 때, 주변 소리가 미친 듯이 시끄럽게 느껴진다. 원래 이렇게 시끄러웠나? 아니다. 내 청각이 조용함에 적응해서 일반적인 소음을 과하게 인식하는 거다.
어떤 날은 에어팟 충전을 안 해서 노캔 없이 일해야 했다. 진짜 집중이 안 됐다. 배터리 잔량 3%가 떴을 때의 공포. 커피가 떨어진 것보다 노캔이 꺼지는 게 더 불안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말 걸어도 못 듣는 경우가 많아졌다. 동료가 바로 옆에서 "야" 하고 불러도 반응이 없어서, 결국 어깨를 톡톡 쳐야 한다. 좀 미안하긴 하다.
주변 사람들은 어떤가
개발자 10명한테 물어봤다. "노이즈 캔슬링 없으면 불안하냐?" 7명이 그렇다고 했다. 3명은 아예 이어폰을 안 쓰는 타입이었는데, 이 사람들이 오히려 신기했다.
"어떻게 저 소음 속에서 집중해요?" "원래 그런 거 아니야?"
아니, 원래 그런 건 맞다. 근데 한번 조용한 세상을 알아버리면 돌아갈 수가 없다.
이어폰 가격도 점점 올라간다. 처음 산 에어팟 프로가 359,000원. 그다음에 소니 WH-1000XM6를 샀다. 489,000원. 이건 노캔 성능이 더 좋다는 리뷰를 봐서. (사실 그냥 멋있어 보여서.)
이걸 끊어야 하나
가끔 생각한다. 이건 도구인가 의존인가.
노이즈 캔슬링이 없으면 불안하다는 건 의존 아닌가. 근데 안경 없으면 못 보는 것도 의존이라고 하진 않잖아. 도구를 잘 활용하는 거지.
이런 식으로 합리화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멈추기가 싫다. 조용한 세상이 너무 좋다. 소음이 사라지면 생각이 또렷해지고, 코드가 눈에 들어오고, 머릿속이 정리되는 느낌.
끊을 이유를 찾고 있는데 아직 못 찾았다. 아니, 찾기 싫은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이 글을 노캔 끼고 쓰고 있다. 집인데. 혼자인데. 그래도 켜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