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코딩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찰
노트북을 펴고 카페에 앉아 코딩하는 사람들. 정말 집중이 되는 걸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걸까?
토요일, 강남역 앞 카페
토요일 오후에 강남역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자리 절반이 노트북이다. 에어팟 끼고 검은 화면에 코드 띄운 사람들. 나도 그중 하나가 되려고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근데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드는 생각이, 우리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집에 모니터도 있고, 의자도 있고, 와이파이도 빠르다. 굳이 여기까지 와서.
집의 함정
집에 앉으면 이상하게 유튜브를 열게 된다. 아니, 열겠다고 마음먹는 것도 아닌데 어느새 손이 가 있다. 침대가 시야에 들어오면 끝이다. 냉장고도 자꾸 나를 부른다. (이건 진짜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라고 믿고 있다.)
카페에 오면 달라진다. 6천 원 내고 자리를 샀으니까, 뭔가를 해야 할 것 같다. 주변에 노트북 펴고 뭔가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나도 해야 할 것 같다. 적당히 불편한 의자, 적당히 시끄러운 배경음, 적당히 남의 시선. 이게 묘하게 긴장감을 만든다.
편의점 알바할 때도 그랬다. 혼자 있으면 폰만 보는데, 사람이 오면 갑자기 정리를 시작하는 그 감각.
6천 원짜리 자리세
아메리카노 한 잔에 6천 원. 두세 시간 앉아 있으면 시간당 2천 원꼴이다.
코워킹 스페이스 월 30만 원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 게다가 오늘은 강남, 내일은 합정, 모레는 성수. 매일 다른 곳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도 나름 장점이다.
물론 카페 입장에서는 좀 그렇겠지. 한 잔 시켜놓고 세 시간. 미안한 마음에 나는 두 시간마다 한 잔씩 추가 주문하는데, 이게 최소한의 예의인지 그냥 내 자기합리화인지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좀 과시도 있다
고백하자면, 카페에서 코드 치는 게 좀 폼 나긴 한다.
터미널 돌아가는 화면을 남이 볼 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묘한 쾌감이 있다. "나 지금 생산적인 거 하고 있어"라는 무언의 방송. (이거 나만 그런 건가.) 인스타에 안 올려도 이미 라이브 중인 셈이다.
근데 그게 나쁜 건 아닌 것 같다. 카페에서 유튜브 보기는 좀 민망하니까, 그 민망함이 다시 코드 에디터로 돌아가게 만든다. 자기 인식이 행동을 바꾸는 거다. 누가 보든 안 보든.
카페 코딩의 불문율
이런 게 있다. 아무도 말은 안 하지만 다들 알고 있는 것들.
남의 화면 안 본다. 전화는 밖에서 한다. 타자 소리 조심한다. 기계식 키보드는 절대 금지다. 이거 어기는 사람 있으면 조용히 자리 옮긴다. 말 안 해도 서로 아는, 연대 없는 연대 같은 거.
한번은 옆 사람이 기계식으로 미친 듯이 타자를 치길래 헤드폰을 꽂았다. 그 사람도 열심히 하는 거니까 뭐라 할 수는 없는데, 소리가 진짜 대단했다.
어쨌든 아메리카노는 식어간다
카페 코딩하는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건 커피가 아니다. 집과 회사 사이 어딘가에 있는 세 번째 공간.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지만 완전히 혼자는 아닌, 그 적당한 거리감.
혼자 일하고 싶지만 완전히 혼자이고 싶지는 않은 거다.
아메리카노가 식었다. 코드는 세 줄 썼다. 근데 이상하게 이 세 줄이 집에서 쓴 서른 줄보다 만족스럽다. (이건 좀 병적인 것 같기도 하고.)
두 번째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이번에는 열 줄 쓸 수 있을까. 아마 못 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