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된 맥북을 바꿀까 말까
아직 돌아가긴 하는데, 팬 소리가 점점 커진다. 장비에 대한 개발자의 끝없는 고민.
카페에서 비명을 질렀다
도커 컨테이너를 세 개 올렸을 뿐인데 맥북이 비명을 지른다.
팬 소리가 카페 전체에 퍼진다. 옆 테이블 사람이 슬쩍 쳐다본다. 미안한 마음에 도커를 하나 내렸다. 키보드 위쪽이 뜨겁다. 계란프라이는 안 되겠지만 손난로 정도는 되겠다.
2021년산 맥북 프로. 올해로 5년 차. 아직 돌아가긴 한다.
"돌아가긴 한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교체 시기가 온 것일 수도 있다. (근데 이 말을 2년째 하고 있다.)
애플 홈페이지의 유혹
애플 홈페이지를 열었다. 최신 맥북 프로. M4 Pro, 24GB RAM, 1TB SSD.
스펙을 보는 순간 현재 맥북의 모든 단점이 선명해진다. 빌드 시간이 너무 길다. 진짜 그런가? 크롬 탭을 30개 열어놓으니까 버벅이는 거지. 배터리가 안 간다. 5년 됐으니 당연하지.
가격을 본다. 370만 원.
창을 닫는다.
370만 원의 가치
냉정하게 따져보자.
현재 맥북으로 업무가 불가능한가? 아니다. 느리긴 하지만 된다. 빌드 시간이 1분이 2분 걸릴 뿐이다. 하루에 빌드를 50번 한다고 치면 50분 차이. 한 달이면 대충 17시간.
17시간이면 적지 않다. 근데 그 17시간이 370만 원의 가치가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진짜 바꿔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보안 업데이트, macOS 지원 종료, 최신 Xcode 호환성. 이런 게 하나둘 쌓이면 어느 날 갑자기 전체가 흔들린다. 점진적 노후화는 느끼기 어렵다가, 한계점을 넘으면 한꺼번에 터진다.
새 장비를 사면 뭔가 달라질 것 같은
사실 장비를 바꾸고 싶은 마음의 이면에는 다른 게 있다.
새 장비를 사면 뭔가 달라질 것 같은 막연한 기대. 빌드가 빨라지면 생산성이 올라가고, 생산성이 올라가면 더 나은 개발자가 될 것 같은. 기타리스트가 새 기타를 사면 연주가 나아질 거라 믿는 거랑 비슷하다.
근데 느린 빌드 시간 동안 트위터 보는 습관은 새 맥북에서도 그대로일 거다. 도구가 바뀌어도 습관은 안 바뀐다. 이걸 알면서도 또 홈페이지를 연다.
당근마켓에 올리는 상상
새 맥북을 사면 현재 맥북은 어떻게 될까.
"서브 노트북으로 쓸 거야." 이렇게 말하지만, 서브 노트북을 실제로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결국 서랍 속에서 잠들거나 당근마켓에 올라간다. "2021년 맥북 프로, 상태 좋음, 팬 약간 있음."
5년 동안 함께한 장비를 떠나보내는 건 묘한 감정이 있다. 이 키보드 위에서 첫 프로덕션 코드를 썼고, 첫 장애를 대응했고, 수백 번의 배포를 했다. 전자기기에 정 들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어쩔 수 없다.
내일도 같은 행동을 반복할 것이다
그래도 결국은 산다. 개발자는 장비를 산다. 이건 거의 자연법칙이다.
다만 시기의 문제다. "돌아가긴 하는데" 단계에서 바꾸면 사치고, "안 돌아가는데" 단계에서 바꾸면 비상이다. 그 사이 어딘가에 적절한 타이밍이 있을 텐데, 그걸 판단하는 건 스펙 시트가 아니라 체감이다.
팬이 돌 때마다 한숨이 나오면, 그때가 아마 그때다.
오늘도 맥북이 뜨겁다. 애플 홈페이지를 다시 열었다.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창을 닫았다. 내일도 아마 같은 행동을 반복할 거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결제 버튼을 누르겠지.
충분히 망설인 끝의 항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