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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IT 회의 문화, 좀 바뀌었으면

오늘도 회의 3개를 했다. 결론이 난 건 0개다. 이 시간에 코드를 짰으면.

오늘의 회의 타임라인

9:30 - 스탠드업 미팅 (예정 15분, 실제 32분) 11:00 - 기획 싱크 미팅 (예정 30분, 실제 1시간 7분) 14:00 - 스프린트 회고 (예정 1시간, 실제 1시간 43분)

총 회의 시간: 3시간 22분. 오늘 근무 시간 8시간 중 42%를 회의에 썼다. 코드를 짠 시간은 2시간 정도. 나머지는 점심이랑 회의 사이 자투리 시간에 슬랙 답장이나 했다.

이게 매일은 아니지만, 주 2~3일은 이렇다.

왜 예정 시간을 넘기나

스탠드업이 32분 걸린 이유를 분석해봤다. 각자 "어제 한 일, 오늘 할 일, 블로커" 말하는 데 5분이면 된다. 근데 누군가가 "이거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어요?" 하면서 논의가 시작된다.

이 논의는 스탠드업이 아니라 별도 미팅에서 해야 할 내용이다. 근데 "지금 잠깐만"이라면서 시작하면 15분이 훌쩍 간다. 그리고 스탠드업에서 시작된 논의를 끊기가 어렵다. 끊으면 뭔가 중요한 걸 무시하는 것 같으니까.

(나도 가끔 이 "잠깐만"의 주범이 된다. 반성한다.)

결론 없는 회의의 패턴

한국 IT 회의에서 자주 보는 패턴이 있다.

  1. 안건 없이 시작한다. "오늘 뭐 논의할 거 있으세요?" 로 시작하는 회의. 준비된 사람이 없으니 그때그때 생각나는 걸 말한다.

  2. 결정권자가 결정을 안 한다. "좀 더 생각해보고 다음에 정하죠" 라는 결론. 다음 회의에서 같은 안건이 올라온다.

  3. 참석자가 너무 많다. 10명이 회의에 있는데, 발언하는 사람은 3명. 나머지 7명은 듣고 있다. 이 7명은 슬랙으로 공유 받으면 되는데.

  4. 회의록이 없다. 회의 끝나면 "그래서 뭐가 결정된 거지?" 하는 사람이 꼭 있다. 나도 가끔 그 사람이다.

외국 회사는 다르다는데

아마존의 "6페이지 문서" 문화 같은 거. 회의 시작 전에 문서를 쓰고, 참석자들이 조용히 읽고, 그다음 토론한다. 이렇게 하면 안건도 명확하고, 논의도 집중적으로 된다.

이걸 우리 팀에 도입하자고 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이유: 아무도 문서를 안 써왔다. "바빠서 못 썼어요" "다음에는 꼭 써올게요" 3번 반복 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문화를 바꾸는 건 도구를 바꾸는 것보다 100배 어렵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내가 시도한 것들

회의 문화를 개선하려고 몇 가지 시도해봤다.

타이머 걸어놓기: "30분 회의니까 타이머 맞출게요." 처음에는 효과가 있었다. 타이머가 울리면 "아 시간 됐네" 하고 정리하는 분위기. 근데 2주 지나니까 "5분만 더" "이것만 마무리하고" 하면서 원점.

참석자 제한: "이 회의는 관련자 3명만 참석하고 나머지는 회의록 공유할게요." 이것도 처음에는 괜찮았다. 근데 빠진 사람이 "저도 들을래요" 하면 거절하기 어렵다.

비동기 논의: "이건 슬랙 스레드에서 논의하고 결론만 공유하죠." 이건 나름 성공적이었다. 근데 복잡한 안건은 텍스트로 하면 더 오래 걸린다는 반론이 있었고, 맞는 말이기도 했다.

결국은 사람의 문제

도구나 프로세스를 아무리 바꿔도, 결국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자"는 의식이 없으면 소용없다.

30분 회의는 30분에 끝내자. 결정할 건 회의 중에 결정하자. 안건 없으면 회의를 취소하자. 참석 안 해도 되는 사람은 안 부르자.

다 당연한 말인데, 실천이 안 되는 이유는 뭘까. 혹시 모르니까. 다 같이 해야 하니까. 빠지면 미안하니까.

내일 회의가 2개 잡혀 있다. 총 예정 시간 1시간 30분. 실제로는 얼마나 걸릴까. 맞춰보는 게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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