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커뮤니티의 독성에 대하여
질문을 올렸더니 '그것도 모르냐'는 댓글이 달렸다. 커뮤니티가 왜 이렇게 된 걸까.
질문 하나에 달린 댓글들
2년 전 일이다. 개발자 커뮤니티에 질문을 올렸다. TypeScript에서 제네릭 관련 문제가 해결이 안 돼서, 코드를 첨부하고 "이 부분이 이해가 안 됩니다"라고 썼다.
첫 번째 댓글: "공식 문서 읽어보셨나요?" 두 번째 댓글: "구글링하면 나오는데" 세 번째 댓글: "이건 기본 중의 기본인데..."
답을 알려준 건 네 번째 댓글이었다. 앞의 세 댓글은 답이 아니라 질문자를 깎아내리는 말이었다.
공식 문서를 안 읽은 게 아니다. 읽었는데 이해가 안 돼서 물어본 거다. 구글링도 했다. 나오는 답이 내 상황이랑 달라서 물어본 거다.
RTFM 문화
"Read The F**king Manual." 개발자 커뮤니티의 오래된 밈이다. 질문하기 전에 문서를 읽으라는 뜻인데, 이게 어느새 "네가 모르는 건 네 탓이다"로 변질됐다.
물론 질문 전에 검색은 해야 한다. 5초만 구글링하면 나오는 걸 물어보면 답답할 수 있다. 근데 문제는, 5초만에 나오는 건지 아닌지를 초보자는 판단 못 한다는 거다. "이게 쉬운 질문인지 어려운 질문인지"를 알려면 이미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초보자가 질문하면 "그것도 모르냐"가 되고, 초보자는 질문하기를 두려워하게 되고, 커뮤니티에는 경력자만 남는다. 악순환.
(사실 나도 가끔 남의 질문 보면서 속으로 "이건 좀..." 한 적이 있다. 반성한다.)
기술 논쟁이 감정 싸움이 되는 순간
React vs Vue. 탭 vs 스페이스. 세미콜론 O vs X. 이런 주제가 올라오면 댓글창이 전쟁터가 된다.
기술 선택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정답"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근데 커뮤니티에서는 자기가 쓰는 기술이 최고이고, 상대방이 쓰는 건 열등하다는 식으로 흐르기 일쑤다.
"아직도 그걸 써요?" "그건 이미 죽은 기술인데" "제대로 된 개발자는 이걸 쓰죠"
이런 말 뒤에는 기술적 근거보다 자존심이 있다. 내가 투자한 시간을 부정당하기 싫은 심리.
왜 이렇게 됐을까
개발자 커뮤니티가 원래부터 독한 건 아니었을 거다. 나름의 가설이 있다.
첫째, 익명성. 닉네임 뒤에 숨으면 말이 거칠어진다. 대면에서는 절대 "그것도 모르냐"라고 안 할 사람이 온라인에서는 쉽게 쓴다.
둘째, 실력이 곧 정체성인 문화. 개발자는 기술 실력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남의 실력을 깎아내리는 게 자기 위치를 높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다. 무의식적으로.
셋째, 번아웃. 솔직히 지치면 친절해지기 어렵다. 하루 종일 코드랑 씨름하다가 초보자의 기본적인 질문을 보면 짜증이 날 수 있다. 이해는 되지만 정당화는 안 된다.
그래도 좋은 커뮤니티는 있다
전부 다 그런 건 아니다.
어떤 디스코드 서버에서는 질문하면 "좋은 질문이에요"로 시작하는 답변이 달린다. 초보 전용 채널이 있고, 멘토 제도가 있고, 독성 댓글은 운영진이 바로 삭제한다.
이런 커뮤니티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질문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행위가 되는 곳. "그것도 모르냐"가 아니라 "여기 같이 보자"가 기본인 곳.
지금도 가끔 질문을 올릴 때 손이 떨린다. 2년 전 그 경험 이후로. 올렸다가 "그것도 모르냐" 댓글이 달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
이런 걱정을 하게 만드는 커뮤니티는 뭔가 잘못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