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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충성심이라는 허상

회사에 충성하면 회사도 나에게 충성할까. 로열티의 비대칭에 대한 이야기.

10년 차가 잘렸다

작년, 전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같이 일하던 선배가 구조조정으로 나갔다고. 10년 차. 야근도 마다않고, 새벽 장애 대응도 자처하던 사람. 회사의 모든 레거시 코드를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회사가 어려우면 같이 고생해야지"가 그 사람의 입버릇이었다.

회사도 같은 생각이었을까. 아니었다. 충성은 일방통행이었다.

면접에서 하는 말

한국 직장 문화에는 유독 "충성"이 강하다.

"이 회사에서 오래 일하겠습니다." 면접에서 이렇게 말하면 가산점이 붙는다. 이직이 잦으면 "끈기가 없다"고 평가받는다. 한 회사에 오래 다니는 게 미덕이다.

근데 그 미덕의 대가가 뭘까.

연봉 인상률은 이직자가 더 높다. 새 기술을 배울 기회는 이직할 때 더 많다. 시장 가치는 한 곳에 오래 있으면 오히려 모호해진다. 회사는 직원한테 충성을 기대하면서, 구조조정은 분기별로 결정한다.

회사한테 직원은 비용이고, 비용은 절감의 대상이다. 이건 나쁜 회사의 이야기가 아니라 회사라는 시스템의 구조적 특성이다.

비대칭

직원이 회사에 바치는 것: 시간, 에너지, 전문성, 충성심, 때로는 건강.

회사가 직원한테 주는 것: 급여, 복지, 경험. 그리고 언제든 끊을 수 있는 계약 관계.

이 관계는 태생적으로 비대칭이다. 직원은 감정이 있고 회사는 법인이다. 직원은 정이 들지만 회사는 숫자로 판단한다.

이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충성을 바치다가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근데 배신당한 게 아니다. 애초에 충성의 대상이 아닌 것에 충성한 거다. (이 말이 좀 냉정하게 들릴 수 있는데, 냉정한 게 맞다.)

근데 정은 든다

이론은 그렇다. 현실에서는 정이 든다.

매일 보는 동료, 함께 밤샌 프로젝트, 첫 서비스 론칭의 긴장감.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 회사라는 추상적 존재에도 감정이 붙는다.

그 감정 자체는 나쁘지 않다. 다만 감정과 판단을 분리할 줄 알아야 한다. 정이 든다고 불합리한 처우를 참는 건 충성이 아니라 자기 착취다.

회사를 좋아해도 된다. 동료를 소중히 여겨도 된다. 근데 내 커리어의 주인은 회사가 아니라 나여야 한다.

선배한테 전화했다

10년 차 선배한테 전화를 했다.

생각보다 밝았다. 이직 준비 중이라고 했다. "10년 동안 한 곳에서 쌓은 게 있으니까 다른 곳에서도 인정받을 거야." 그 말이 맞았으면 좋겠다. 근데 솔직히, 한 곳에서 10년 쌓은 게 다른 곳에서도 통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력서를 업데이트했다. 이직하려는 게 아니다. 내 가치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회사에 충성하는 시간에 나의 시장 가치를 높이는 게 진짜 충성이다. 나한테 대한 충성. 내 실력이 올라가면 어떤 회사에서든 필요한 사람이 된다. 특정 회사에서만 필요한 사람이 되면, 그 회사가 나를 필요 없어 할 때 무너진다.

어쨌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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