탭 100개 열어놓는 사람의 심리
크롬 탭이 100개가 넘어간 날, 왜 닫지 못하는지 생각해봤다
크롬이 RAM을 8기가 먹고 있었다
어느 날 노트북 팬이 미친 듯이 돌아서 작업 관리자를 열었다. 크롬이 메모리를 7.8GB 쓰고 있었다. 탭 개수를 세봤다. 정확히 113개. 창 3개에 걸쳐서. 이때 처음 생각했다. 나 이거 좀 비정상 아닌가?
주변에 물어보니까 개발자 중에 탭 많이 열어놓는 사람이 은근히 많았다. "나도 80개쯤 되는데?" "탭 바에 파비콘만 보여요." 동질감에 안심하면서도, 이게 왜 이러는 건지 궁금했다.
닫지 못하는 진짜 이유
첫 번째, "나중에 볼 거야" 심리. 스택오버플로우 답변, 블로그 글, 공식 문서. 지금은 안 보지만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서 열어둔다. 근데 솔직히, 3일 넘게 열어둔 탭을 다시 본 적이 거의 없다. 통계를 낼 수는 없지만 체감상 5% 미만.
두 번째, 작업 컨텍스트 보존. 이게 개발자한테 특히 강하다. "이 탭 닫으면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릴 것 같아." 디버깅하면서 열어놓은 문서 탭, API 레퍼런스 탭, 비슷한 에러 관련 깃헙 이슈 탭. 이걸 닫으면 다시 그 맥락으로 돌아가는 데 15분이 걸린다.
세 번째, 이건 좀 찔리는데, "바쁜 척" 심리. 탭이 많으면 일을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인다. 화면 공유할 때 탭 바가 빽빽하면 "와 열심히 하시네요" 반응이 온다. (본인만 그렇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다.)
정보 수집 중독과의 관계
심리학에서 이걸 "정보 호딩(information hoarding)"이라고 부른다. 물건을 못 버리는 수집벽처럼, 정보도 못 버리는 거다. "이 글을 북마크 안 하면 다시 못 찾을 거야"라는 불안감. 근데 구글 검색하면 3초 만에 다시 찾을 수 있는데도 닫지 못한다.
FOMO(Fear of Missing Out)과도 연결된다. 이 탭을 닫으면 중요한 정보를 놓칠 것 같은 공포. 사실 113개 탭 중 진짜 중요한 건 한 5개쯤이다.
탭 정리를 시도해봤다
시도 1: 탭 매니저 확장 프로그램. OneTab을 설치했다. 모든 탭을 한 번에 리스트로 정리해준다. 쓰기 시작한 첫 주는 좋았다. 113개가 10개로 줄었다. 근데 한 달 뒤에 OneTab 리스트에 저장된 URL이 347개가 됐다. 탭을 리스트로 옮긴 것뿐이지 정리한 게 아니었다.
시도 2: 30분마다 탭 정리 타이머. 30분마다 알람이 울리면 안 쓰는 탭을 닫기로 했다. 3일 만에 포기. 30분마다 흐름이 끊기는 게 탭 100개보다 더 해로웠다.
시도 3: 탭 개수 제한 확장 프로그램. 탭이 20개 이상이면 새 탭이 안 열리게 설정. 이게 의외로 효과가 있었다. 새 탭을 열려면 기존 탭 하나를 닫아야 하니까, 자연스럽게 "이 탭 진짜 필요한가?"를 매번 판단하게 됐다.
지금 탭 개수
이 글을 쓰는 시점에 탭이 23개 열려있다. 제한을 25개로 설정해둬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113개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크롬 메모리 사용량도 2.3GB로 줄었다.
근데 가끔 제한을 풀고 싶은 충동이 온다. "지금 디버깅 중이니까 잠깐만..." 하면서 제한을 해제하면, 어느새 60개가 돼있다. 결국 의지력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문제다. 물리적으로 못 열게 막아야 된다.
탭 113개 시절이 가끔 그립다. 비효율적이었지만 뭔가 풍요로운 느낌이 있었다. (이 생각이 정보 호딩의 증상이라는 건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