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비전 프로가 바꿔놓은 것과 바꾸지 못한 것
출시 2년,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비전 프로의 성적표를 들여다본다
2년 됐는데, 어떻게 됐나
2024년 2월에 비전 프로가 나왔을 때 다들 난리였다. 모니터 사라진다, 공간 컴퓨팅 시대 열린다. 나도 좀 설렜던 게 사실이다.
근데 2년이 지나고 보니,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누적 판매량이 한 100만 대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아이폰 첫 해 600만 대랑 비교하면 좀 초라하다. 다만 3,499달러짜리 1세대 제품이라는 걸 생각하면, 뭐 애플워치 초기랑 비슷한 궤적이긴 하다. 애플워치도 처음엔 비싼 장난감 취급받다가 시리즈 3에서 터졌으니까.
확실히 달라진 건 영상이다
영화 보는 경험은 진짜 다르다. 눈앞에 100인치 스크린이 둥둥 떠있는 그 느낌은 65인치 TV로도 절대 못 준다.
디즈니플러스가 공간 비디오를 밀기 시작하면서 콘텐츠가 500편을 넘었고, NBA나 MLB 같은 스포츠 중계도 180도 몰입형으로 나온다.
기업 쪽도 좀 움직였다. 보잉이 와이어링 하네스 조립에 도입해서 작업 시간을 25% 줄였다고 하고, 존스홉킨스 병원에서는 척추 수술 시뮬레이션에 쓰고 있다. (이런 건 진짜 쓸모있어 보인다.)
근데 일상을 바꾸진 못했다
가장 큰 문제가 무게다. 650g이 스펙으로는 대단해 보이는데, 얼굴에 30분 이상 올려놓으면 얘기가 완전 달라진다.
2시간 영화 보면 코랑 이마에 자국 남는다. 처음에는 익숙해지겠지 했는데 6개월 지나도 여전히 불편하다.
텍스트 작업은 여전히 안 된다. 코딩이나 문서 작성에서 27인치 모니터를 이길 수가 없다. 가상 키보드 타이핑 속도가 물리 키보드의 한 30% 수준이고, 맥 가상 디스플레이 띄우려면 맥도 같이 들고 다녀야 한다.
결국 모니터 대체제가 아니라 추가 기기가 된 셈이다. 이게 비전 프로의 가장 큰 아이러니다.
앱 생태계가 좀 쓸쓸하다
2025년 말 기준 네이티브 앱이 한 2,500개쯤 된다. 아이패드가 같은 기간에 확보한 앱의 10분의 1도 안 된다.
SwiftUI 기반이라 진입 장벽은 낮아 보이는데, 공간 인터랙션 디자인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UX를 이해해야 하니까 실제로는 꽤 어렵다. 사용자가 어디를 보는지, 손 제스처를 어떻게 하는지까지 다 고려해야 한다. 2D에서 3D로의 전환이 모바일이 데스크톱 대체할 때보다 사고의 전환이 더 크다.
그리고 100만 대 설치 기반으로는 앱 하나로 유의미한 매출을 올리기가 어렵다. 인디 개발자들은 대부분 관망 중이다. (나라도 그럴 것 같다.)
B2B는 다르긴 하다. 한 건 계약이 수천만 원이니까 설치 기반이 작아도 상관없고, 실제로 매출 상위권은 거의 다 기업용 앱이다. 기업 시장에서 먼저 자리를 잡고 소비자 시장은 나중에 공략하는 전략일 수도 있다.
진짜 승부는 아직 안 왔다
애플 패턴은 항상 비슷하다. 1세대에서 비전 보여주고, 2세대에서 대중화. 아이폰도 아이패드도 애플워치도 다 그랬다.
2026년 하반기 예상되는 2세대는 가격을 2,000달러 아래로, 무게를 30% 줄인다는 루머가 돈다. M5 칩 탑재로 성능도 크게 올라갈 전망이다.
더 얇은 렌즈, 더 가벼운 프레임, 더 긴 배터리. 이 세 개만 해결되면 판이 좀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물으면
비전 프로가 실패냐 성공이냐를 지금 판단하는 건 좀 성급한 것 같다. 확실한 건 모니터 대체 기기가 아니라 새로운 카테고리의 미디어 소비 기기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스마트폰도 아이폰 3GS 나오고 나서야 진짜 터졌다. 비전 프로도 비슷한 경로를 밟을 수 있는데, 그 시간이 3년일지 10년일지는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공간 컴퓨팅이라는 방향 자체는 되돌릴 수 없는 것 같다. 문제는 시기와 형태일 뿐인데.
당장 비전 프로를 살 필요는 없다. 근데 SwiftUI 공간 레이아웃 문서를 한번 훑어보는 정도는 해둘 만하다. 새로운 플랫폼이 열릴 때 먼저 뛰어드는 개발자한테 기회가 가니까. 앱스토어 초기에 뛰어든 사람들이 그랬듯이. 다만 이 판이 진짜 열릴지 안 열릴지는 아직 확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