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연봉, 인플레이션을 이기고 있을까
숫자로 보는 개발자 실질 구매력의 변화
연봉이 올랐다는 건 착각이다
"개발자 평균 연봉이 또 올랐다"는 기사가 매년 나온다. 원티드 2025 리포트 기준 경력 5년 차 백엔드 개발자 평균이 6,500만 원이다. 2022년 5,800만 원 대비 12% 올랐다.
12% 올랐으니 좋은 거 아닌가? 내가 보기엔 반쪽짜리 진실이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지수가 누적 약 11% 올랐다. 실질 구매력 기준으로 보면 연봉은 1%포인트밖에 안 오른 거다. 3년간 고작 1%.
명목 연봉만 보면 "잘 올랐네" 싶지만, 실질 구매력으로 보면 거의 제자리다.
CPI보다 체감이 더 심하다
CPI는 전체 소비 바스켓 평균이라 TV, 냉장고, 통신비 같은 가격 정체 항목도 포함된다. 근데 개발자의 실제 주요 지출을 따로 떼어보면 얘기가 다르다.
서울 IT 클러스터 인근 원룸 월세가 2022년 대비 한 25% 올랐다. 강남, 판교, 성수 일대가 특히 심하다. 판교 역세권 원룸이 2022년에 월 70만 원이었는데 지금 90만 원 넘긴다.
점심값은 만 원이 기본이 됐다. 2022년에는 7~8천 원이면 됐는데 2025년에는 1만 2천 원도 흔하다. 커피 한 잔도 5,000원을 넘기는 카페가 대부분이다.
연봉이 500만 원 오른 것보다 월세 20만 원 오르고 점심값 2천 원 오르고 커피값 500원 오른 게 체감상 더 크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월세 상승분 240만 원, 점심값 한 50만 원, 커피값 12만 원. 합치면 300만 원이다. 생활비 상승분이 연봉 인상분을 거의 상쇄한다. (월급 올랐는데 왜 남는 게 없지 했더니 이런 거였다.)
직급별로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전체 평균은 의미가 없다. 직급별로 쪼개보면 완전히 다른 그림이 나온다.
주니어 1~3년 차는 4,200만에서 4,500만으로 7% 올랐다. 물가 상승률에 한참 못 미친다. 주니어 개발자의 실질 구매력은 오히려 떨어졌다.
시니어 7년 이상은 7,500만에서 8,500만으로 한 13%. 물가를 간신히 넘겼다.
가장 크게 오른 건 AI/ML 엔지니어다. 같은 경력 기준으로 20~30% 프리미엄이 붙었다. AI 인력 수요가 공급을 크게 초과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같은 5년 차인데 AI 경험 유무로 연봉이 2천만 원 이상 차이 나는 시대다.
IT가 고연봉이라고들 하는데
라고들 하지만 다른 업종과의 격차가 줄고 있다.
2020년에 개발자 평균 연봉이 전체 직종 대비 약 1.6배였는데, 2025년에는 1.4배로 줄었다. 금융, 컨설팅 임금 상승이 IT보다 빨랐다.
특히 주니어 레벨에서는 사무직과의 차이가 거의 없어지는 추세다. 대기업 사무직 신입이랑 중소 IT 주니어 연봉 차이가 거의 없거나, 오히려 대기업 사무직이 높은 경우도 있다.
"개발 배우면 돈 많이 번다"는 말에 조건이 좀 붙어야 한다. 어떤 도메인에서, 몇 년 차에, 어떤 기술 스택으로 일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니까.
실질 구매력을 지키려면
연봉 협상을 잘하는 것도 중요한데 한계가 있다.
7년간 일하면서 느낀 건, 연봉 자체보다 연봉 외 수입이 실질 구매력을 결정한다는 거다. 사이드 프로젝트, 강의, 스톡옵션, 투자 수익. 본업 연봉만으로 인플레이션 이기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지출 관리도 수입 늘리는 것만큼 중요하다. 매달 구독하는 SaaS, 안 가는 헬스장, 습관적 커피. 작은 지출들이 모이면 연봉 인상분을 쉽게 잡아먹는다.
결국 연봉 협상을 꾸준히 하고, 부수입 채널을 만들고,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걸 동시에 해야 하는데, 이걸 다 챙기면서 코딩도 잘하라는 게 좀 많은 걸 요구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근데 안 하면 실질 구매력이 계속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