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면서 일하기, 현실은
제주도에서 2주간 워케이션 하면서 깨달은 현실적인 이야기
로망은 이랬다
카페에서 바다를 보며 코딩하고, 오후에는 서핑하고, 저녁에는 해산물 먹고. SNS에서 보던 디지털 노마드의 삶이 부러워서 회사에 2주 워케이션을 신청했다. "제주도에서 일하겠습니다." 승인 나왔을 때 설레는 마음으로 에어비앤비를 잡았다. 1박 6만 7천 원짜리, 14박이면 93만 8천 원.
비행기 왕복 12만 원, 렌트카 2주 38만 원. 총 비용 143.8만 원. 서울 월세 내면서 추가로 이 돈을 쓰는 거다. (계산하면서 살짝 후회했다.)
첫째 날부터 현실을 맛봤다
숙소 와이파이가 느렸다. 다운로드 23Mbps, 업로드 4Mbps. 코드 푸시는 되는데 화상회의가 끊겼다. 팀 스탠드업 미팅에서 내 화면이 정지되는 게 3번이나 반복됐다. 팀장이 "거기 인터넷 괜찮아?"라고 물었을 때 "네 괜찮습니다" 했는데 괜찮지 않았다.
결국 근처 카페로 옮겼는데 카페 와이파이는 더 느렸다. 핫스팟으로 해결했다. 데이터 요금제를 무제한으로 바꾸는 데 2만 원 추가.
카페에서 코딩하는 건 낭만이 아니다
바다 보이는 카페에 앉았다. 노트북 열었다. 솔직히 집중이 안 됐다. 바다가 보이니까 바다를 보게 된다. 옆 테이블에서 관광객들이 사진 찍고 웃고 떠드는데 그 사이에서 코드 리뷰를 하고 있자니 "나 뭐 하는 거지" 싶었다.
2시간 동안 PR 하나 처리했는데, 서울에서 했으면 40분이면 끝날 양이었다. 카페 음료값 6천 원 내고 생산성은 반토막. 이건 아니다 싶어서 둘째 날부터 숙소에서만 일했다.
일과 여행은 시간이 겹친다
오전 9시부터 6시까지 일하면 해질 무렵이다. 관광지 갈 시간이 없다. "퇴근 후에 돌아다니면 되지" 했는데, 6시 이후에 할 수 있는 건 저녁 먹기랑 산책 정도다. 해안도로 드라이브는 좋았는데 그건 주말에도 할 수 있는 거고.
평일 중에 반차 2번 쓰고 성산일출봉이랑 만장굴을 갔다. 그게 2주 워케이션 동안의 관광 전부였다. 14일 중 관광 이틀. 나머지는 숙소에서 코딩. 이걸 여행이라고 할 수 있나.
좋았던 점도 있긴 하다
아침 7시에 해변 산책하고 출근(숙소 책상에 앉기)하는 루틴은 진짜 좋았다. 서울에서 지하철 타고 출근하는 것과 바다 옆 걷는 건 시작하는 기분이 완전히 다르다.
저녁에 먹은 갈치조림이 한 마리에 2만 3천 원이었는데 서울 식당 가격의 반이었다. 맛도 비교가 안 됐다. 회도 저렴했다. 식비 면에서는 오히려 서울보다 적게 들었다.
주말에는 온전히 관광했다. 중문 해수욕장에서 반나절 보내고, 애월 카페 거리 돌아다니고. 주말만큼은 진짜 여행이었다.
결론: 워케이션은 반만 맞다
"여행하면서 일한다"가 아니라 "여행지에서 일한다"가 정확한 표현이다. 일하는 시간은 그대로인데 장소만 바뀐 거다. 낭만적이진 않았다. 근데 환경이 바뀌면서 리프레시 효과는 분명 있었다. 2주 후에 서울 돌아와서 한 달 정도는 컨디션이 좋았다.
다시 가겠냐고 하면, 2주는 길다. 5일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금토일 쉬고 월화 일하고 돌아오는 구성. 이러면 비용도 반으로 줄고 관광 비율도 올라간다. 근데 이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일 잘 분리하는 사람은 2주도 괜찮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