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6 min read

자취 개발자의 요리 이야기

배달비 아끼려고 시작한 요리가 취미가 되기까지의 과정

배달비가 월 34만 원이었다

작년 말에 카드 명세서를 봤더니 배달 앱 결제가 34만 2천 원이었다. 배달팁이랑 일회용 용기비 빼면 실제 음식값은 한 26만 원 정도. 나머지 8만 원이 순수 수수료다. 매달 8만 원을 편의를 위해 내고 있었다는 게 갑자기 아까워졌다.

근데 솔직히 요리를 할 줄 몰랐다. 라면이랑 계란 프라이가 레퍼토리의 전부였다. (이것도 계란 프라이를 태우는 수준이었다.)

시작은 덮밥 3종

유튜브에서 "자취 요리 초보"를 검색하면 덮밥 레시피가 한 백만 개 나온다. 참치마요 덮밥, 돼지고기 덮밥, 계란 덮밥. 이 세 개로 시작했다. 공통점이 뭐냐면 밥 위에 뭘 올리면 되는 거라 실패 확률이 낮다.

첫 참치마요 덮밥은 마요네즈를 너무 많이 넣어서 죽 같았다. 두 번째부터 양 조절을 배웠다. 참치캔 하나에 마요네즈 한 스푼 반이 적당하다는 걸 세 번 만에 알아냈다.

재료비가 한 끼 3천 원 정도. 배달시키면 만 원이니까 7천 원 절약. 한 달에 20끼만 해 먹어도 14만 원 아끼는 거다.

실패담: 된장찌개 사건

자신감이 붙어서 된장찌개에 도전했다. 레시피 보면 간단하다. 두부, 호박, 양파, 된장. 끓이면 되는 거 아닌가.

문제는 된장 양이었다. 레시피에 "된장 1큰술"이라고 돼 있는데 내 큰술 감각이 없었다. 된장을 세 숟가락 넣었더니 짠 맛이 폭발했다. 물을 추가해서 희석하려다가 국물이 너무 많아졌고, 불을 세게 해서 졸이려다가 바닥이 탔다.

결과물은 짜고 탄 맛이 나는 된장국이었다. 반은 먹고 반은 버렸다. 이날 배달 앱을 또 켰다.

요리와 코딩의 공통점

요리를 몇 달 하다 보니 코딩이랑 비슷한 점이 있다. 레시피는 알고리즘이고, 재료는 인풋이고, 결과물은 아웃풋이다. 레시피를 정확히 따라하면 대부분 먹을 만한 게 나온다. 근데 레시피 없이 자기 감으로 하면 높은 확률로 망한다.

중요한 건 재현 가능성이다. 어쩌다 맛있게 된 거 말고, 매번 비슷한 맛이 나오게 하는 거. 양념 비율을 대충 "좀" 넣는 게 아니라 정량으로 기록해두니까 실패가 줄었다. 노션에 레시피 DB를 만들어서 양념 비율이랑 조리 시간을 적어둔다.

지금 레퍼토리

6개월 정도 지난 지금 만들 수 있는 요리가 12가지다. 덮밥 3종, 볶음밥 2종, 파스타 3종, 찌개 2종, 반찬 2종. 한 주 식단을 짜면 배달 없이 평일 저녁을 해결할 수 있다.

배달 앱 결제가 34만 원에서 11만 원으로 줄었다. 월 23만 원 절약. 장보기 비용이 월 15만 원쯤 들어가니까 순수 절약은 8만 원 정도. (배달비 수수료 8만 원을 그대로 아끼는 거다.)

근데 시간 대비 효율을 따지면 솔직히 애매하다. 장보기 30분, 요리 30분, 설거지 20분. 한 끼에 1시간 20분이다. 이 시간에 코딩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계산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계속하는 이유

8만 원 절약이 본질은 아니다. 코드만 치다가 뭔가 손으로 만드는 걸 하면 기분 전환이 된다. 디버깅하다 막히면 부엌에 가서 양파를 썬다. 양파 써는 데 디자인 패턴이나 시간 복잡도는 필요 없다. 그냥 칼질만 하면 된다. 그게 좋다.

다음 목표는 김치찌개인데, 김치 익히는 정도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해서 좀 겁난다.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