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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미니멀 옷장 실험

옷장 절반을 비우고 3개월 살아본 기록

옷장이 닫히지 않았다

자취방 옷장이 안 닫혔다. 옷이 삐져나와 있었다. 세어보니 상의 43벌, 하의 17벌, 아우터 11벌, 기타 잡다한 것들. 근데 실제로 입는 건 상의 7~8벌, 하의 4벌, 아우터 3개. 전체의 20%를 90%의 시간 동안 입고 있었다.

나머지 80%는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옷들이다. "언젠가 입겠지"라는 마음으로 3년째 걸려 있었다.

마크 저커버그가 매일 같은 옷 입는 이유를 "의사결정 피로를 줄이려고"라고 했는데, 그 말이 갑자기 와닿았다. 아침에 뭐 입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매일 7~8분이다. 일년이면 42시간. (계산하니까 좀 충격적이다.)

1단계: 안 입는 옷 분류

3개월 동안 안 입은 옷을 전부 꺼냈다. 봄이라 겨울옷 제외하고도 34벌이 나왔다. 이 중에서 "다음에 입을 것 같은 옷"과 "솔직히 안 입을 옷"을 나눴다.

문제는 거의 다 "다음에 입을 것 같은" 쪽으로 들어간 거다. 미련이 생겨서 결정을 못 내리겠다. 특히 한번 입고 안 입는 비싼 셔츠. "이거 8만 원 줬는데..." 매몰 비용의 오류라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감정이 안 따라온다.

2단계: 강제 실행

고민하면 끝이 없어서 규칙을 정했다. 지난 6개월간 한 번도 안 입은 옷은 무조건 뺀다. 예외 없이. 이러니까 29벌이 나갔다. 상태 좋은 11벌은 당근마켓에 올리고(총 7만 3천 원에 팔렸다), 나머지는 의류수거함에 넣었다.

남은 옷: 상의 17벌, 하의 8벌, 아우터 6벌. 아직 많은 것 같지만 원래의 절반이다.

3개월간 미니멀 옷장으로 살아본 결과

아침에 옷 고르는 시간이 2분으로 줄었다. 7분에서 2분이면 하루 5분 절약. 대단해 보이지 않는데 아침의 5분은 저녁의 30분만큼 귀하다.

옷이 적으니까 세탁 관리도 쉬워졌다. 전에는 세탁물이 밀려서 주말에 3시간씩 빨래했는데, 지금은 주 2회 소량씩 돌린다. 건조대에 널 옷도 적어서 방이 깔끔하다.

근데 실패한 부분도 있다. 경조사용 옷을 다 버려서 후배 결혼식 때 입을 게 없었다. 급하게 셔츠 하나 사는 데 5만 9천 원 들었다. 미니멀리즘도 최소한의 상황별 세트는 필요하다.

유니폼화를 시도해봤다

검정 티셔츠 5장, 네이비 바지 3장을 기본으로 두고 평일에 거의 이것만 입어봤다. 2주간. 결과, 사무실에서 아무도 눈치 못 챘다. 개발자 복장에 대한 기대치가 원래 낮아서 그런 것 같다.

근데 한 가지 문제. 본인이 지루하다. 매일 같은 옷 입으면 기분 전환이 안 된다. 결국 유니폼 5벌 + 포인트 아이템 3~4개로 조합하는 방식으로 타협했다. 완전한 유니폼은 나한테 안 맞았다.

지금 상태

미니멀 실험 시작한 지 3개월째. 옷장이 여유롭게 닫힌다. 새 옷 충동구매가 줄었다. 전에는 "싸니까 일단 사자"였는데 지금은 "이거 진짜 입을까?"를 먼저 생각한다.

완전한 미니멀리스트가 된 건 아니다. 요즘 가을 자켓이 눈에 들어오는 걸 보면 소비 욕구가 사라진 건 아니다. 근데 전보다 한 템포 쉬고 결정하게 됐다. 이 정도면 실험은 성공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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