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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회식 생존기: 내향인 편

회식 때마다 화장실에 가는 빈도가 평소의 3배인 사람의 이야기

"오늘 저녁에 고기 먹으러 갈까?"

팀 슬랙에 이 메시지가 올라오면 심장이 한 박자 빠르게 뛴다. 고기가 싫은 게 아니다. 고기는 좋다. 문제는 고기 옆에 앉아서 2~3시간 동안 "대화"를 해야 한다는 거다.

5년 동안 회식을 대충 세어보면 80번 정도. 그중에서 "아 진짜 재밌었다" 하고 돌아온 건 솔직히 열 번도 안 된다. 나머지는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

자리 배치가 운명을 결정한다

회식의 절반은 자리 배치에서 결정된다. 이걸 깨닫는 데 3년이 걸렸다.

좋은 자리: 팀장님 바로 옆이 아닌, 내가 편한 사람 옆. 그리고 끝자리. 끝자리는 한쪽만 신경 쓰면 되니까 에너지 소모가 절반이다.

나쁜 자리: 한가운데. 양옆에서 다른 대화가 동시에 일어나는데 어디에 끼어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팀장님 맞은편. "요즘 어때?"라는 질문이 올 확률이 높다.

도착하면 일단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고 끝자리를 확보한다. 늦게 가면 한가운데 남은 자리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회식에 일찍 간다. (사람들은 내가 열정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전략이다.)

대화 레퍼토리

내향인이라고 대화를 못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에너지가 빨리 소모된다. 그래서 효율적인 대화 레퍼토리가 있다.

질문하기. 상대방이 말하게 만든다. "주말에 뭐 하셨어요?" "그 드라마 어때요?" 질문을 던지면 상대방이 5분을 말한다. 나는 "진짜요?", "오 그렇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면 된다. 이게 제일 에너지 소모가 적다.

음식 관련 대화. "이 고기 맛있지 않아요?" "여기 된장찌개 괜찮은데." 음식은 안전한 주제다. 논쟁이 안 생긴다. (가끔 "부먹이냐 찍먹이냐"에서 논쟁이 생기긴 한다.)

기술 이야기. 개발팀이니까 기술 이야기가 가능하다. 근데 이건 양날의 검이다. 재밌는 기술 이야기가 되면 좋은데, 회사 코드 불만이 되면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2차가 진짜 문제다

1차는 어떻게든 버틴다. 90분이면 끝나니까. 문제는 "2차 갈 사람~" 이 순간이다.

안 가면 "쟤는 왜 항상 안 가지?" 하는 눈치가 보인다. 가면 3시간이 추가된다. 노래방이면 차라리 낫다. 노래 부르는 동안은 대화를 안 해도 되니까. 근데 조용한 바에 가면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 이미 1차에서 대화 에너지를 다 썼는데.

내 전략: 1차까지는 무조건 참석하고, 2차는 세 번 중 한 번만 간다. "오늘 좀 피곤해서 먼저 들어갈게요" 패턴. 세 번 연속 안 가면 눈치가 보이니까 주기를 조절한다.

최악의 회식 기억

작년에 팀 워크숍이 있었다. 1박 2일이다. 밤에 숙소에서 술을 마시는데 "돌아가면서 한 명씩 올해 소감을 말해보자" 이런 시간이 있었다. 7명이 앉아서 한 명씩 말하는데 내 차례가 올수록 심장이 빨라졌다.

결국 "올해 많이 배웠고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같은 식상한 말을 했다. 10초 만에 끝냈다. 다른 사람들은 3~5분씩 말했는데.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좀 더 진솔하게 말할걸" 하고 후회했다.)

근데 회식이 무조건 싫은 건 아니다

3~4명이서 조용한 데 가서 밥 먹는 건 좋다. 대화가 깊어질 수 있으니까. 8명 이상이 되면 대화가 쪼개지고 소음이 커지면서 나한테는 힘들어진다.

최근에 좋았던 건 팀원 2명이랑 점심에 순두부 먹으면서 한 시간 동안 이야기한 거다. 회식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그냥 "같이 밥 먹기"였다. 이런 게 더 좋다.

내향인 회식 생존 팁 요약

일찍 가서 끝자리 확보. 질문으로 대화 에너지 절약. 2차는 적당히 빈도 조절. 화장실은 쉬는 시간으로 활용. (진짜로 화장실에서 1~2분 쉬고 나오면 에너지가 좀 충전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자기를 탓하지 않는 거다. "왜 나는 다른 사람처럼 회식을 즐기지 못할까" 이런 생각은 도움이 안 된다. 그냥 다른 거다.

다음 회식은 목요일이다. 끝자리 사수하러 일찍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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