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재택 vs 하이브리드, 뭐가 더 나은지
풀 재택 1년, 하이브리드 8개월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솔직한 비교
출근길 지하철에서 깨달은 것
하이브리드 출근 첫날, 2호선을 탔다. 사당역에서 강남역까지 47분. 풀 재택 1년 동안 잊고 있었다, 이 감각을. 사람 냄새, 땀 냄새, 이어폰에서 새어나오는 남의 음악. 퇴근 시간에는 53분이 걸렸다. 하루에 1시간 40분을 지하철에서 보내는 거다.
풀 재택 때는 이 시간에 운동을 했다. 아니, 솔직히 운동한 건 처음 두 달이고, 나머지는 30분 더 잤다.
풀 재택이 좋았던 점
집중 시간이 확실히 많았다. 오전에 3시간 연속 코딩하는 게 가능했다. 사무실에서는 "잠깐만" 어깨 탭이 하루에 대여섯 번 온다. 각각 5분이라 해도 30분이고, 다시 몰입 상태로 돌아가는 데 15분씩이면 총 2시간은 날아간다.
점심도 자유로웠다. 11시 반에 먹든 2시에 먹든 아무도 신경 안 쓴다. 밥 먹고 잠깐 낮잠 자는 것도 가능하다. (이건 진짜 생산성에 도움이 된다. 과학적으로도.)
통화도 편했다. 사무실에서 전화 오면 회의실 잡아야 하는데, 집에서는 그냥 받으면 된다.
근데 9개월쯤 되니까 이상해졌다
사람을 안 만나니까 점점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3일 연속 같은 옷을 입거나, 오전 11시까지 씻지 않거나, 하루 종일 말을 한마디도 안 하거나. 슬랙 메시지는 보내는데 "말"을 안 하는 거다.
가장 문제였던 건 일과 생활의 경계가 사라진 것. 저녁 8시에 슬랙 알림이 오면 "잠깐만 볼까" 하고 노트북 열었다가 10시까지 일했다. 풀 재택이 풀 근무가 되는 함정. 실제로 퇴근 후 업무 시간이 풀 재택 때 주당 평균 4.2시간이었다. (타이머 앱으로 재봤다.)
하이브리드로 바꾼 뒤
주 3일 출근, 2일 재택 하이브리드로 바꿨다. 처음에는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양쪽의 단점만 모은 것 같았다. 출근하는 날은 지하철이 힘들고, 재택하는 날은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하면서 뭔가 허전하고.
근데 한 달 지나니까 적응됐다. 의외로 출근하는 날에 미팅을 몰아넣으면 효율이 좋았다. 코드 리뷰도 대면으로 하면 30분 걸릴 게 슬랙으로 하면 반나절이다. 얼굴 보고 "여기 왜 이렇게 했어?" 한마디면 끝나는 걸, 텍스트로는 문맥 설명하느라 길어진다.
재택하는 날에는 진짜 코딩에만 집중했다. 미팅 없는 날로 고정하니까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순수 개발 시간이 6시간 나왔다. 사무실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숫자다.
둘 다 해보고 나서 솔직한 평가
정답은 없다. 진짜 없다. 사람마다, 팀마다, 프로젝트마다 다르다.
혼자서 깊은 작업을 많이 하는 사람은 풀 재택이 맞다. 협업이 많고,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한 팀은 하이브리드가 맞다. 근데 이건 교과서적인 답이고, 현실은 "우리 회사가 뭘 하라고 하는지"에 달려있다.
내가 하이브리드를 약간 더 선호하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을 만나야 정신건강에 좋더라. 풀 재택 9개월 차에 느꼈던 그 묘한 고립감이 하이브리드에서는 없다.
대신 출퇴근 시간 1시간 40분은 진짜 아깝다. 그 시간에 사이드 프로젝트 하나 더 할 수 있었을 텐데. (솔직히 안 했겠지만, 할 수 있었다는 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