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랙 이모지 문화가 말해주는 것들
우리 회사 슬랙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이모지 Top 10과 그 뒤에 숨은 팀 문화
우리 회사에서 가장 많이 쓰는 이모지
슬랙 통계를 뽑아봤다. 지난 3개월 기준 가장 많이 쓰인 이모지 1위는 :eyes: (눈 이모지)였다. 2위 :thumbsup:, 3위 :pray:. 예상과 다르지 않았는데, 4위가 의외였다. 커스텀 이모지 :ㅇㅋ:였다. (누군가가 "ㅇㅋ"라는 텍스트를 이미지로 만들어서 올린 커스텀 이모지다.)
이 이모지들을 보면서 재밌는 걸 깨달았다. 이모지 사용 패턴이 팀 문화를 꽤 정확하게 반영한다는 거다.
:eyes:가 1위인 이유
:eyes:는 "봤어요"라는 뜻이다. 근데 정확히는 "읽었는데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혹은 "관심은 있는데 지금 바쁘다"라는 뉘앙스다. 우리 회사에서 :eyes:가 1위인 건, 읽었다는 표시는 하고 싶지만 텍스트로 답장할 여유는 없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사실 이게 좋은 문화인지는 잘 모르겠다. "확인했습니다"라는 텍스트 대신 이모지 하나로 대체하는 게 효율적이긴 하다. 근데 보내는 사람 입장에서 :eyes: 하나만 달리면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특히 의견을 물어본 메시지에 :eyes:만 3개 달릴 때.)
커스텀 이모지에서 보이는 것들
우리 슬랙에 커스텀 이모지가 347개 있다. 이걸 누가 만들었는지 보면 대부분 디자인팀이다. 개발팀에서 만든 건 :shipit:, :lgtm:, :hotfix: 같은 실용적인 것들이고, 디자인팀은 :어쩔티비:, :퇴근각:, :월요병: 같은 감성적인 것들을 만든다.
커스텀 이모지를 가장 많이 만든 사람이 문화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는 걸 느꼈다. 작년에 디자인팀 리드가 :수고했어: 이모지를 만들었는데, 이제 배포 후에 이 이모지를 다는 게 관례가 됐다. 이모지 하나가 팀 문화를 만든 셈이다.
:pray: 남용 문제
:pray:가 3위인 건 좀 씁쓸하다. 이 이모지는 보통 부탁할 때 쓴다. "이거 리뷰 좀 부탁드려요 :pray:" 식으로. 근데 :pray:가 많다는 건, 부탁할 일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고, 직접적으로 요청하기보다 이모지로 완화하려는 문화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 회사에서는 :pray: 대신 :point_right:를 많이 썼다. "이거 해주세요 :point_right:" 식으로. 같은 부탁인데 느낌이 다르다. :pray:는 "미안한데 부탁해도 될까요" 느낌이고, :point_right:는 "이거 네 일이야" 느낌이다. 어느 쪽이 건강한 문화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모지 리액션만 달리고 답장이 안 오는 문제
가장 큰 문제는 이거다. 중요한 결정 사항을 공유했는데 이모지 리액션만 달리고 아무도 텍스트로 의견을 안 남기는 경우. :thumbsup:이 5개 달려있으면 다들 동의한 건가? 아니면 그냥 읽었다는 건가?
이걸 해결하려고 팀에서 규칙을 하나 만들었다. 의사결정이 필요한 메시지에는 :thumbsup:이 아니라 스레드에 한 줄이라도 텍스트로 의견을 남기기. 처음 2주는 잘 지켜졌다. 지금은... 솔직히 다시 :thumbsup: 리액션으로 돌아갔다. (규칙을 만든 건 나인데 나도 안 지키고 있다.)
이모지는 결국 거울이다
슬랙 이모지 문화는 그 팀의 소통 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eyes:가 많은 팀은 조용한 팀이고, 커스텀 이모지가 많은 팀은 장난기가 있는 팀이고, :pray:가 많은 팀은 수평적이려고 노력하는 팀이다. 우리 팀은 세 가지 다 해당하는데,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