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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베란다 텃밭 초보 후기

상추 모종 6개로 시작해서 토마토, 고추까지 확장한 베란다 텃밭 4개월 기록

상추 모종 6개로 시작했다

마트에서 상추 한 봉지가 3,900원이길래 "이거 직접 키우면 더 싸지 않나?"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했다. 다이소에서 화분 3개(개당 2,000원), 배양토 1봉지(3,000원), 모종 6개(총 4,800원)를 샀다. 초기 투자 12,800원.

근데 결론부터 말하면 경제성은 별로다. 4개월 동안 상추에서 수확한 양이 마트에서 사면 대략 27,000원어치. 투자 대비 수익이 14,200원이다. 여기서 물값이랑 내 노동 시간을 빼면 마이너스다. (개발자 시급으로 계산하면 완전 적자.)

근데 돈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는 걸 한 달 만에 깨달았다.

첫 달에 상추 반을 죽였다

모종을 심고 매일 물을 줬다. 아침에 출근 전에 한 번, 퇴근 후에 한 번. 2주 뒤에 상추 3개가 시들시들해졌다. 왜인지 몰라서 검색해봤더니 과습이었다. 물을 너무 많이 준 거다. 상추는 물을 좋아하지만 배수가 안 되면 뿌리가 썩는다.

화분 바닥에 구멍이 부족했다. 다이소 화분의 배수 구멍이 하나뿐이라 물이 고이고 있었다. 드릴로 구멍을 3개 더 뚫었다. 살아남은 3개는 그 뒤로 잘 자랐다. (드릴이 없어서 동료한테 빌렸는데, "화분에 구멍 뚫는다고?" 하는 눈빛을 받았다.)

두 번째 달에 벌레가 왔다

진딧물이었다. 아침에 베란다에 나갔더니 상추 잎 뒤에 초록색 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처음에 "이것도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했는데, 3일 만에 상추 잎이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농약은 쓰고 싶지 않았다. 직접 먹을 거니까. 검색해서 나온 방법이 비눗물 스프레이. 주방 세제 한 방울을 물 500ml에 타서 뿌렸다. 효과가 있긴 했는데, 3일마다 한 번씩 반복해야 했다. 한 달 동안 이걸 반복했다. 귀찮았지만 화학 농약보다는 나을 거라 믿었다.

세 번째 달에 토마토와 고추를 추가했다

상추가 자리를 잡으니까 욕심이 났다. 방울토마토 모종 2개, 청양고추 모종 2개를 추가했다. 여기서 실수가 있었다. 토마토는 깊은 화분이 필요한데 얕은 화분에 심었다. 뿌리가 퍼질 공간이 없으니까 성장이 더뎠다.

결국 10리터짜리 큰 화분을 인터넷에서 샀다. 개당 8,500원. 토마토를 옮겨 심었더니 2주 만에 눈에 띄게 컸다. 고추도 마찬가지. 처음부터 큰 화분을 살 걸. 작은 화분 사고 큰 화분 사고 하니까 이중 지출이 됐다.

네 번째 달의 수확

방울토마토가 열렸다. 아침에 베란다에서 빨갛게 익은 토마토를 따서 바로 먹었다. 마트에서 사 먹는 것과 맛이 다르다... 고 말하고 싶지만, 솔직히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대를 좀 낮추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근데 "내가 키운 걸 먹는다"는 경험 자체가 묘하게 만족스러웠다. 코드를 짜서 배포하는 것과 비슷한 성취감이 있다. 씨를 뿌리고 (코드를 짜고), 돌보고 (디버깅하고), 수확하는 (배포하는) 사이클이 실제 세계에서 돌아가는 느낌.

고추는 8개 수확했다. 청양고추라 매웠다. 라면에 넣어서 먹었는데, 마트 고추보다 훨씬 매웠다. (이건 진짜다.)

베란다 텃밭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초보라면 상추로 시작해라. 실패해도 금전적 손실이 적다. 화분은 처음부터 넉넉한 크기로 사라. 배수 구멍은 필수다. 물은 겉흙이 말랐을 때만 줘라. 이 네 가지만 지키면 첫 수확까지 갈 수 있다. 경제성을 기대하면 실망한다. 이건 취미다. 월 만 원 정도 드는 취미로 생각하면 가성비가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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