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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족을 꿈꾸는 개발자의 현실

FIRE 운동의 실체와 개발자가 놓치고 있는 것들

45세에 은퇴하겠다는 계획

IT 커뮤니티에서 FIRE가 뜨겁다. 연봉이 상대적으로 높은 개발자들 사이에서 "10~15년 안에 경제적 자유 달성하고 은퇴하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늘고 있다.

Financial Independence 부분은 모든 사람이 추구해야 할 가치 있는 목표라고 생각한다. 근데 Retire Early 부분은 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숫자부터 까보면

FIRE 기본 공식은 연간 생활비의 25배를 모으면 은퇴 가능하다는 거다. 4% 룰 기반인데, 매년 자산의 4%만 인출하면 자산이 고갈되지 않는다는 트리니티 스터디 결과다.

이건 미국 주식 시장 역사적 수익률 기반이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좀 무리가 있다.

월 생활비 300만 원이면, 연간 3,600만 원, 25배는 9억이다.

연봉 7천, 세후 5,200만, 생활비 3,600만 쓰면 연간 저축이 1,600만 원. 연 7% 수익률로 투자한다고 가정하면 9억 모으는 데 약 22년 걸린다. 30세에 시작하면 52세. (조기라고 부르기엔 좀 애매하다.)

저축률을 극단적으로 높이면?

소득 50% 이상 저축하면 17년, 70%면 8.5년으로 단축된다. 연 7% 수익률 가정이다.

미국에서는 연봉 20만 달러 받으면서 지출을 연 4만 달러로 줄이는 극단적 절약형이 가능하다. 근데 한국에서 연봉 7천 받으면서 70% 저축하려면 월 130만 원으로 생활해야 한다. 서울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형 FIRE는 저축률보다 소득 증가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이직으로 연봉 올리고, 사이드 프로젝트로 부수입 만들고, 투자로 불리는 복합 전략이다.

FIRE 달성하면 자유롭다고들 하는데

라고들 하지만, 조기 은퇴한 사람들 이야기가 항상 장밋빛인 건 아니다.

미국 FIRE 커뮤니티 조사에서 FIRE 달성 후 실제로 은퇴한 사람의 한 30%가 2년 내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할 일이 없어서.

개발자가 특히 이 문제에 취약한 것 같다. 우리 정체성의 상당 부분이 "만드는 사람"에서 온다. 코드 짜고, 시스템 설계하고, 문제 해결하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끼는데, 이걸 다 내려놓으면 뭐가 남나.

한 전직 개발자 블로그를 읽은 적이 있다. 42세에 한 15억 모아서 FIRE 달성했는데, 6개월 만에 오픈소스 프로젝트에 기여하기 시작했다고. 결국 돈 안 받고 일하는 상태가 된 거다. 은퇴한 건지 무급 개발자가 된 건지 좀 모호하다. (이 사례가 많은 걸 말해주는 것 같다.)

개발자한테 맞는 건 따로 있다

전통적 FIRE보다 Coast FIRE나 Barista FIRE가 더 맞는 것 같다.

Coast FIRE는 은퇴 자금을 충분히 모아놓고, 이후에는 생활비만 벌면 되는 상태다. 예를 들어 35세까지 3억을 모아두면, 연 7%로 복리 성장해서 60세에 약 17억이 된다.

그 이후에는 고연봉 직장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 하고 싶은 프로젝트만 골라서 하고, 연봉보다 재미를 기준으로 일을 선택할 수 있다.

완전한 은퇴가 아니라 "돈 때문에 일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얻는 거다. 이게 더 현실적이고 더 건강한 목표 아닐까.

45세에 모든 걸 내려놓는 것보다, 45세에 내가 원하는 일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갖는 것. 근데 이것도 3억을 35세까지 모으는 게 전제인데, 그것부터가 만만치 않다는 게 현실이다. FIRE를 향해 달리는 건 좋은데, 도착점에서 뭘 할 건지도 미리 생각해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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