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자유 계산기를 돌려봤다
FIRE 계산기에 내 숫자를 넣었더니 53세가 나왔다
"경제적 자유"라는 단어에 꽂혔다
퇴근길에 유튜브를 보다가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영상을 봤다. "월 생활비의 300배를 모으면 경제적 자유를 달성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4% 룰이라고 한다. 자산의 4%로 1년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으면 이론적으로 일을 안 해도 된다.
이론적으로.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당장 계산기를 켰다.
내 숫자를 넣어보자
월 생활비부터 산출했다. 지난 6개월 평균을 내봤다.
| 항목 | 월평균 |
|---|---|
| 주거비 (전세 이자) | 450,000원 |
| 식비 | 680,000원 |
| 교통비 | 112,000원 |
| 통신비 | 67,000원 |
| 보험 | 135,000원 |
| 구독 서비스 | 43,000원 |
| 기타 (의류, 문화 등) | 380,000원 |
| 합계 | 1,867,000원 |
월 187만 원. 연으로 환산하면 2,240만 원. 여기에 여행이나 돌발 지출을 넣으면 연 2,800만 원쯤 된다.
4% 룰 적용: 2,800만 원 / 0.04 = 7억 원.
7억을 모으면 경제적 자유다. (숫자를 보고 한동안 멍했다.)
7억을 어떻게 모으나
현재 순자산: 약 1억 2천만 원. (전세 보증금 2억 7천 중 본인 자금 1억 + 주식 487,000원 + 예적금 약 1,500만 원. 빚: 학자금 730만 원.)
월 저축 가능 금액: 약 180만 원. 연봉에서 세금, 생활비 빼면 이 정도다.
연 수익률 7% 가정 (미국 S&P 500 장기 평균이 약 10%인데 보수적으로). 복리 계산기를 돌렸다.
결과: 약 18년.
현재 나이가 29세니까 47세. 근데 이건 지출이 안 늘어나고 수입도 안 변한다는 비현실적 가정이다. 결혼하면? 아이가 생기면? 월 생활비가 2배로 뛸 수도 있다.
현실적인 가정으로 다시 돌렸다. 월 생활비 350만 원 (가족 기준), 목표 자산 10.5억. 저축 월 200만 원 (연봉 상승 반영). 결과: 24년. 53세.
53세. FIRE의 RE(Retire Early)에 해당하는 건가? 모르겠다.
계산기의 함정
이런 계산이 위험한 이유가 있다. 숫자를 넣으면 결과가 나오니까 마치 계획이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한다. 근데 현실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물가상승률. 연 3%만 잡아도 20년 후 생활비가 지금의 1.8배다. 7억이 아니라 12.6억이 필요할 수도 있다.
건강. 40대에 큰 병이 오면 계산이 다 틀어진다.
부모님. 부양비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변수를 다 넣으면 계산기 결과가 60세, 65세로 밀려난다. 그냥 정년까지 일하라는 뜻이 된다.
그래도 계산은 해볼 만하다
우울해지려고 계산한 건 아니다. 계산해보니까 좋은 점이 있다.
첫째, 저축 습관이 강해졌다. "180만 원을 빠짐없이 넣어야 한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기니까.
둘째,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게 됐다. 구독 서비스 43,000원 중에 안 보는 넷플릭스 계정을 해지했다. 월 17,000원 절약. 20년 복리로 하면 이것도 꽤 큰 차이다. (이론적으로.)
셋째, "경제적 자유"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완전히 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상태. 그러면 꼭 7억이 아니어도 된다. 최소 생활비만 커버하는 수입원이 있으면 되는 거니까.
개발자로서의 계산
프리랜서 개발을 부업으로 하면 어떨까. 월 100만 원만 추가 수입이 있으면 목표 자산이 4.5억으로 줄어든다. 근데 현실적으로 퇴근 후에 프리랜서 일을 할 체력이 있나? 지금 퇴근하면 넷플릭스 켜는 사람이?
블로그 수익화도 생각해봤다. 현재 월 수익: 0원. 광고를 달면 월 5만 원 정도 된다고 하는데, 5만 원으로는 복리 계산에 넣기도 민망하다.
현실적인 계획
거창한 FIRE가 아니라 작은 목표를 세우기로 했다. 35세까지 순자산 3억. 이게 되면 그때 다시 계산을 돌려본다.
그리고 지출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가계부 앱을 깔았다. 3일째 되는 중인데 이미 귀찮다. 근데 내가 어디에 돈을 쓰는지 모르면 계획이 아니라 희망사항이니까.
53세에 은퇴할 수 있다는 계산기 결과는 솔직히 동기부여가 안 된다. 근데 "매달 180만 원을 저축하면 47세에 가능하다"는 숫자는 어떻게든 노력해볼 만한 목표처럼 느껴진다. 6년 차이인데 체감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