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먼밀러 vs 시디즈: 100만원짜리 의자 가치
허리가 아파서 100만 원짜리 의자를 사기까지의 과정과 3개월 사용기
허리가 보낸 경고
하루에 10시간 이상 앉아서 일한다. 회사 8시간, 집에서 사이드 프로젝트 2~3시간. 작년 가을부터 허리 왼쪽에 뻐근한 통증이 왔다. 처음에는 "좀 쉬면 낫겠지" 했는데 2주가 지나도 안 나았다.
정형외과를 갔더니 "자세 문제"라고 했다. 스트레칭 하라고, 의자 바꾸라고. 그때까지 나는 쿠팡에서 산 89,000원짜리 메쉬 의자를 쓰고 있었다. (3년 전에 샀는데 메쉬가 늘어나서 엉덩이 부분이 해먹처럼 처져 있었다.)
후보를 두 개로 좁혔다
인체공학 의자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가격대가 20만 원대부터 200만 원대까지 천차만별이다. 인터넷 후기를 3일간 읽은 결과, 진지한 선택지는 두 가지로 좁혀졌다.
허먼밀러 에어론: 약 1,790,000원. 인체공학 의자의 끝판왕이라는 평. 시디즈 T80: 약 890,000원. 한국 브랜드, 가성비로 유명.
2배 가까운 가격 차이. 근데 "매일 10시간 앉는 데 쓰는 돈"이라고 생각하면 100만 원 차이가 그렇게 큰가 싶기도 했다.
시디즈 T80을 먼저 샀다
결국 시디즈를 먼저 샀다. 이유는 단순하다. 179만 원을 의자에 쓰는 용기가 없었다. 89만 원도 의자치고는 비싸지만, 허먼밀러보다는 부담이 적었다.
첫 인상은 좋았다. 89,000원 의자에서 올라온 사람한테는 모든 게 좋다. 럼버 서포트가 허리를 받쳐주는 느낌, 시트 깊이 조절, 팔걸이 4방향 조절. 2주 정도 쓰니까 허리 통증이 확실히 줄었다.
근데 한 달 뒤에 불만이 생겼다
메쉬 시트의 탄성이 생각보다 빨리 적응된다. 처음에 "와 편하다" 하던 게 한 달 지나면 그냥 "의자"가 된다. 특히 4시간 이상 앉아 있으면 엉덩이 쪽이 좀 눌리는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헤드레스트가 내 목 위치에 잘 안 맞았다. 키 173cm 기준인데, 헤드레스트를 최대로 올려도 머리를 완전히 받치지 못한다. 이건 개인 체형 차이라서 매장에서 안 앉아보고 산 내 잘못이다.
허먼밀러를 체험하러 갔다
시디즈를 산 지 2개월쯤 됐을 때, 서울 강남 허먼밀러 매장에 갔다. "그냥 앉아만 보자"는 마음이었다.
에어론에 앉는 순간 차이를 느꼈다. 시디즈도 좋지만, 에어론의 메쉬는 체중 분산이 더 균일하다는 게 체감됐다. 특히 장시간 앉았을 때 엉덩이 압박감이 적다는 평이 많은데, 매장에서 30분 앉아본 거로는 정확히 비교하기 어렵다.
근데 179만 원을 추가로 쓸 수 있는가. 이미 시디즈에 89만 원을 썼는데. 총 268만 원짜리 의자 경험이 되는 거다. (시디즈를 중고로 팔면 좀 나을 텐데.)
결국 허먼밀러는 안 샀다
시디즈를 중고로 팔 생각도 했지만, 3개월 밖에 안 된 의자를 파는 게 좀 그래서 그냥 쓰기로 했다. 허리 통증은 시디즈만으로도 많이 나아졌고, 나머지는 스트레칭으로 보완하고 있다.
허먼밀러가 더 좋은 의자인 건 맞는 것 같다. 근데 시디즈 대비 2배 가격만큼의 차이인가는 잘 모르겠다. 30% 정도 더 좋은데 100% 더 비싼 느낌이랄까.
진짜 중요한 건 의자가 아니었다
3개월 쓰면서 깨달은 건, 아무리 좋은 의자를 써도 자세가 나쁘면 소용없다는 거다. 의자를 바꾸고 나서도 모니터를 내려다보는 자세를 고치지 않으면 목이 아프고, 50분 일하고 10분 쉬는 습관을 안 들이면 어차피 뻣뻣해진다.
결국 의자 + 모니터 암 + 스트레칭 루틴, 이 세 가지가 세트다. 의자만 바꿔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걸 처음부터 알았으면 89만 원 의자만으로 충분했을 거다.
아무튼 허리는 이제 괜찮다. 그거면 된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