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폭락 이후 남은 것들
2024년 고점에서 사서 폭락을 맞은 뒤 남은 생각들
정확히 얼마를 잃었냐면
2024년 11월에 비트코인을 9만 7천 달러에 샀다. 거의 고점이었다. "10만 달러 간다"는 분위기에 휩쓸렸다. 투자금 1,200만 원. 이더리움도 같은 시기에 800만 원어치 샀다.
2025년 중반에 시장이 빠지기 시작했을 때 손절을 못 했다. "조정이겠지, 다시 오르겠지." 그게 안 올랐다. 최저점 기준으로 비트코인은 42% 빠졌고, 이더리움은 58% 빠졌다.
총 투자 2,000만 원 중에 회수한 게 1,087만 원. 순손실 913만 원. 월급 두 달 치가 날아갔다. (이 숫자를 쓰면서도 아직 좀 아프다.)
실수를 정리해봤다
첫째, FOMO에 샀다. 주변에서 "너 아직도 안 사?" 하는 분위기에서 판단력이 흐려졌다. 트위터 타임라인이 전부 수익 인증이었고, 안 사면 뒤처지는 것 같았다. 전형적인 감정 매수다.
둘째, 몰빵했다. 2천만 원 전액을 한 번에 넣었다. 분할 매수를 했으면 평단이 낮아졌을 텐데. "빨리 들어가야 수익이 크다"는 생각이 문제였다.
셋째, 손절 기준이 없었다. "몇 퍼센트 빠지면 판다"는 기준 없이 그냥 들고 있었다. 10% 빠졌을 때 안 팔았고, 20% 빠졌을 때도 안 팔았고, 40% 빠졌을 때는 팔기엔 너무 많이 빠진 것 같아서 또 안 팔았다.
손실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
코인 가격을 하루에 23번 확인했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코딩하다가, 밥 먹으면서, 자기 전에. 가격이 내릴 때마다 기분이 바닥을 쳤다. 코드에 집중이 안 됐다. PR 리뷰하면서도 바이낸스 앱을 열고 있었다.
심리적 영향이 생각보다 컸다. 잠을 잘 못 잤다. 913만 원을 잃었다는 사실이 자존감에 타격을 줬다. "나는 멍청한 투자자다"라는 자기 비하가 한 달간 지속됐다.
근데 솔직히 913만 원이 인생을 망할 금액은 아니다. 1년 열심히 모으면 회복 가능한 돈이다. 그걸 깨닫고 나서 좀 나아졌다.
코인 자체가 문제인가
코인이 나쁜 투자처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2020년에 사서 2024년에 팔았으면 수익률이 어마어마했을 거다. 문제는 내 진입 타이밍과 투자 방식이었다.
고점에서 산 건 코인의 문제가 아니라 내 판단의 문제다. 주식으로 했어도 같은 행동이면 같은 결과였을 거다. FOMO에 몰빵하고 손절 못 하는 패턴은 자산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이걸 인정하는 게 시간이 좀 걸렸다. 코인 탓을 하는 게 편하니까.
남은 것들
913만 원을 잃고 남은 건 뭐가 있나. 수업료라고 하기엔 비싼 수업이었다.
투자 원칙이 생겼다. 잃어도 되는 돈만 넣는다. 분할 매수한다. 손절 기준을 미리 정한다. 이 세 가지를 종이에 써서 모니터 옆에 붙여놨다.
감정과 투자를 분리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가격 확인을 하루 2번으로 줄였다. 아침이랑 저녁. 실시간 알림도 껐다. 어차피 장기 투자라면 실시간 가격을 몰라도 된다.
지금 코인 계좌에 남은 돈은 340만 원어치다. 팔지도 추가 매수하지도 않고 놔두고 있다. 오르면 좋고 안 오르면 수업료 추가분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가끔 "그때 그냥 팔걸" 하는 생각이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