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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평가 시즌 생존 가이드

5번의 인사평가를 겪으면서 깨달은 것들

매년 12월이 무섭다

인사평가 시즌이 돌아오면 사무실 분위기가 달라진다. 다들 갑자기 열심히 일하는 것 같고, 점심시간에 "올해 뭐 했지" 하는 자조적인 대화가 오간다. 나도 5번째 인사평가를 앞두고 있는데, 여전히 긴장된다.

첫 번째 평가 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열심히 했으니까 잘 나오겠지"라고 생각했다. B등급을 받았다. 기대는 A였다. 그때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다"는 걸 처음 느꼈다.

가장 큰 실수: 기록을 안 남긴 것

3년 차 때까지 업무 기록을 제대로 안 남겼다. 연말에 자기평가서를 쓰려고 하면 "올해 뭐 했더라" 부터 막힌다. 슬랙 히스토리를 뒤져가면서 쓴 자기평가서는 퀄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4년 차부터 노션에 주간 업무 로그를 쓰기 시작했다. 이번 주에 뭘 했는지, 어떤 임팩트가 있었는지를 금요일마다 10분 투자해서 적는다. 이것만으로도 자기평가서 쓰는 시간이 이틀에서 3시간으로 줄었다.

숫자로 말해야 한다

"API 성능을 개선했습니다"랑 "API 응답 시간을 평균 340ms에서 120ms로 65% 단축했습니다"는 같은 일을 한 건데 인상이 완전히 다르다. 평가하는 사람은 20명의 자기평가서를 읽어야 한다. 추상적인 문장은 기억에 안 남는다.

나는 3년 차까지 "~를 개선했습니다", "~에 기여했습니다" 식으로 썼다. 지금 보면 뭘 한 건지 나도 모르겠다. 숫자가 없으면 임팩트가 안 보인다.

근데 모든 업무를 숫자로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코드 리뷰 문화를 개선했다거나, 팀 온보딩 프로세스를 만들었다거나. 이런 건 "코드 리뷰 응답 시간이 평균 1.5일에서 4시간으로 단축" 같은 간접 지표를 찾아야 한다. 좀 귀찮지만 효과는 확실하다.

피드백을 미리 받아두는 게 좋다

연말에 갑자기 동료한테 "나에 대해 피드백 좀 써줘"라고 하면 "좋은 동료입니다" 같은 무의미한 답변이 온다. 당연하다. 급하게 쓰니까.

대신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내가 잘한 점이랑 부족한 점 한 가지씩만 말해줘"라고 해놓으면 연말에 재료가 쌓인다. 이걸 4월부터 시작했으면 12월에 풍부한 피드백 모음이 생긴다.

나는 작년에 이걸 10월에야 시작해서 재료가 부족했다. 올해는 1월부터 하고 있다. (이것도 기록의 힘이다.)

면담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

인사평가 면담에서 "다른 사람이 안 해서 제가 했습니다" 식의 불만을 얘기한 적이 있다. 3년 차 때. 평가 결과는 변하지 않았고, 매니저와의 관계만 좀 어색해졌다.

면담은 협상의 자리가 아니라 피드백을 받는 자리다. "어떻게 하면 다음에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게 훨씬 낫다. 구체적인 답변이 오면 그걸 다음 분기 목표로 삼으면 된다.

근데 이게 마음처럼 쉽지 않다. B를 받으면 감정이 먼저 올라온다. 그래서 면담 전에 "오늘은 감정을 배제하자"를 세 번 되뇐다.

결국 평가는 평가일 뿐이다

5번 겪어보니까 평가에 일희일비하는 게 줄었다. B를 받아도 세상이 끝나지 않고, S를 받아도 다음 달 월급이 극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성과급 차이는 있지만, 생각보다 크지 않다.)

그래도 인사평가를 가볍게 볼 수는 없다. 승진, 연봉 협상, 이직할 때의 레퍼런스에 영향을 미치니까. 그냥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되 성실하게 준비하자" 정도가 내 결론이다.

올해도 12월이 다가온다. 주간 로그는 잘 쓰고 있으니 작년보다는 나을 거다.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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