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6 min read

출퇴근길 팟캐스트 중독

지하철 47분을 팟캐스트로 채우다 보니 생긴 이상한 습관들

이어폰 없이 출근이 불가능해졌다

3개월 전에 무선 이어폰을 잃어버렸다. 편의점 가는 길에 주머니에서 빠진 것 같다. 당일에 새 걸 주문했다. 다음 날 도착하기 전까지 지하철 47분이 너무 길었다. (정확히는 편도 47분, 왕복 1시간 34분.)

그때 깨달았다. 나는 팟캐스트에 중독됐다.

어쩌다 이렇게 됐나

시작은 1년 반 전이다. 출퇴근 시간이 무료해서 "개발 관련 팟캐스트나 들어볼까" 하고 하나 구독한 게 전부였다. 지금 구독 중인 채널이 14개다. 주간 에피소드가 쌓이는 속도가 내가 듣는 속도보다 빨라서 항상 밀려 있다. 현재 미청취 에피소드 수: 43개.

출퇴근 시간만으로는 부족해서 점심 먹으면서도 듣고, 설거지하면서도 듣고, 산책하면서도 듣는다. 재생 속도는 1.5배. 처음엔 1배로 듣다가 "이 사람 말이 너무 느리다" 싶어서 올렸는데, 이제 1배속으로 들으면 답답하다. (이게 중독 증상 맞나?)

듣는 것들

개발 쪽은 세 개 정도. 기술 트렌드 위주로 듣는다. 근데 솔직히 개발 팟캐스트는 전체 청취 시간의 30%도 안 된다. 나머지는 경제 뉴스, 시사, 역사, 심지어 범죄 다큐까지. 범죄 다큐는 밤에 들으면 무서워서 출근길에만 듣는다.

가장 많이 재생한 에피소드는 "한국 부동산 시장의 30년" 시리즈인데 6편짜리를 세 번 들었다. 총 재생 시간 12시간 24분. (왜 세 번이나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편안하다.)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첫 번째, 조용한 게 불편하다. 카페에서 코딩하다가 이어폰을 빼면 뭔가 허전하다. 집에서 혼자 있을 때 아무 소리도 안 나면 불안하다.

두 번째, 대화 중에 "아 그거 어디서 들었는데" 하고 출처가 팟캐스트인 걸 말하게 됐다. 회의에서 "이건 제가 팟캐스트에서 들은 건데요" 하면 사람들이 미묘하게 웃는다. 논문이나 기사를 인용하면 전문적으로 보이는데 팟캐스트를 인용하면 좀 가벼워 보이는 느낌이 있다.

세 번째, 길에서 사람들이 이어폰을 안 끼고 다니면 "저 사람은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건 좀 문제가 있다는 걸 안다.

한번 디톡스를 시도해봤다

2주 전에 "일주일 동안 팟캐스트 안 듣기"를 해봤다. 3일 만에 실패했다. 첫째 날은 괜찮았다. 지하철에서 창밖을 봤다. 둘째 날은 좀 심심했지만 견딜 만했다. 셋째 날 출근길에 앞사람 어깨 너머로 폰을 보게 됐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바로 이어폰을 꽂았다.)

실패의 원인을 분석해봤다. 팟캐스트를 듣는 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있다"는 착각을 준다. 출퇴근 시간이 그냥 이동이 아니라 학습 시간이 되니까 죄책감이 없다. 이 죄책감 면제가 중독의 핵심인 것 같다.

실제로 남는 건 얼마나 되나

솔직히 많지 않다. 일주일 전에 들은 에피소드 내용을 떠올려보면 제목조차 기억 안 나는 게 대부분이다. 37분짜리 에피소드를 듣고 기억나는 건 한두 문장. 그마저도 부정확하다.

근데 가끔 코드를 짜다가 "아 이거 관련해서 뭔가 들었는데" 하고 떠오를 때가 있다. 그게 구체적인 지식이라기보다는 방향성 같은 건데, 이걸 가치 있다고 봐야 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내일도 들을 거다

중독인 건 알겠는데 끊을 생각은 없다. 담배나 술보다는 낫지 않나. 다만 재생 속도를 1.25배로 낮춰볼까 생각 중이다. 1.5배로 들으면 정보가 흘러가는 느낌이라서. 근데 그러면 밀린 43개를 언제 다 듣지. 아무튼 출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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