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맥 만들기가 싫은 개발자를 위한 가이드
네트워킹 이벤트에서 도망친 횟수만 6번인 내향인 개발자의 관계 만들기
컨퍼런스 화장실에서 15분을 숨었다
작년 가을에 개발자 컨퍼런스에 갔다. 세션은 재밌었다. 문제는 중간 쉬는 시간이었다. "자유롭게 네트워킹 하세요~" 하는 안내방송이 나오는 순간 심장이 빨라졌다. 모르는 사람한테 먼저 말 거는 게 너무 어렵다. 결국 화장실에 가서 폰을 보다가 다음 세션이 시작될 때까지 숨었다. 15분. (내 인생에서 가장 긴 화장실 시간이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밋업에서 도망친 게 6번, 명함을 받고 연락 안 한 게 수십 번.
"인맥이 중요하다"는 말이 싫다
사실이긴 하다. 이직할 때 지인 추천이 있으면 확실히 유리하고, 모르는 거 물어볼 사람이 있으면 성장이 빠르다. 근데 "인맥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 자체가 나를 더 움츠러들게 만든다.
내가 불편한 건 "네트워킹"이라는 행위 자체다. 목적이 있는 만남. "나중에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 관계를 만들어두자"는 계산. 이게 솔직히 위선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근데 결국 관계는 필요하다
3년 차 때 혼자서 막힌 문제가 있었다. 2주를 고민했는데 해결이 안 됐다. 슬랙에서 모르는 시니어에게 DM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이런 문제가 있는데 혹시 경험 있으시면 조언 부탁드려도 될까요?" 답장이 왔다. 3줄짜리 답변이 내 2주를 해결했다.
그때 깨달았다. 관계가 필요한 건 맞는데, 그걸 만드는 방법이 꼭 네트워킹 이벤트일 필요는 없다는 거다.
내향인이 관계를 만드는 방식
내가 5년 동안 시도하면서 효과가 있었던 것들이다.
오픈소스 기여. 코드로 대화하는 거다. PR을 보내고, 리뷰를 받고, 이슈에 댓글을 달면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생긴다. 직접 얼굴 보고 말할 필요가 없다. 내가 가장 오래 연락하는 개발자 3명 중 2명을 오픈소스에서 만났다.
기술 블로그. 글을 쓰면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찾아온다. 댓글이나 DM으로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된다. 내가 먼저 말을 걸 필요가 없다는 게 핵심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작은 채널. 천 명짜리 디스코드보다 30명짜리 스터디 그룹이 낫다. 작은 커뮤니티에서 꾸준히 활동하면 어느 순간 서로를 알게 된다.
오프라인이 꼭 필요한 순간도 있다
근데 솔직히 온라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특히 이직할 때. 추천서를 써줄 사람, 내부 사정을 알려줄 사람은 한 번이라도 직접 만난 적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1:1 커피챗을 한다. 대규모 이벤트보다 훨씬 낫다. "혹시 시간 되시면 커피 한잔 하면서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라고 보내는 게 백 명 앞에서 자기소개하는 것보다 백배 쉽다.
지금까지 커피챗을 시도한 게 11번, 실제로 만난 게 7번. 그중 지금까지 연락하는 사람이 3명이다. 성공률이 높은 편은 아닌데, 이 3명이 내 커리어에 미친 영향이 꽤 크다.
내가 실패한 방법
밋업에서 "발표자한테 질문하기" 전략을 시도한 적 있다. 세션 끝나고 발표자에게 다가가서 질문을 하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된다는 팁이었다. 준비한 질문까지 있었다. 근데 막상 가니까 이미 다른 사람 5명이 줄을 서 있었고, 내 차례가 오니까 머리가 하얘져서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도망쳤다.
또 한 번은 링크드인에서 모르는 사람한테 6명한테 연결 요청과 메시지를 보낸 적 있다. 답장이 온 게 0명. 메시지가 너무 형식적이었던 것 같다. "안녕하세요 저는 ~에서 근무하는 ~입니다" 이런 식으로.
지금은 이렇게 한다
관계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하는 걸 꾸준히 공유하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다. 블로그를 쓰고, 가끔 코드를 공유하고, 작은 커뮤니티에서 질문에 답변을 달아준다.
연에 한두 번은 오프라인 모임에 간다. 근데 목표를 "3명과 대화하기"에서 "1명과 깊게 이야기하기"로 바꿨다. 이게 나한테는 훨씬 맞는다.
네트워킹을 잘하는 사람이 되려는 건 포기했다. 그냥 내가 편한 방식으로 관계를 쌓는 거다. 속도가 느려도 괜찮다. 어차피 5년 차인데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