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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일지 쓰는 습관이 가져다준 것들

매일 퇴근 전 10분, 업무 일지를 1년 넘게 쓰면서 달라진 것들

연말 성과 면담에서 멍했던 기억

작년 12월. 팀장님이 "올해 뭘 했는지 정리해서 가져오세요" 했다. 노션을 열었다. 비어 있었다. 1월에 뭘 했는지 기억이 안 났다. JIRA를 뒤져서 티켓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아 이거 내가 했구나" 하면서 정리하는 데 3시간이 걸렸다.

그때 결심했다. 매일 기록하자. 2024년 1월 2일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432일. (빠진 날이 있어서 실제 작성일은 387일.)

처음에는 너무 많이 썼다

첫 주에 의욕이 넘쳐서 하루에 한 페이지씩 썼다. 어떤 코드를 왜 그렇게 짰는지, 미팅에서 누가 뭐라고 했는지, 내 감정까지. 한 번 쓰는 데 30분이 걸렸다.

2주 만에 지쳤다. 당연하다. 퇴근 전에 30분을 일지에 쓰는 건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포맷을 줄였다.

지금 쓰는 포맷은 이거다:

날짜: 2025-08-26
오늘 한 것: (3줄 이내)
막힌 것: (있으면)
내일 할 것: (1줄)

이게 전부다. 쓰는 데 7~10분. 퇴근 전에 "일지 쓰자" 하고 후다닥 적는다.

3개월 차에 효과가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3개월은 "이게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근데 4개월 차에 이전 기록을 돌아볼 일이 생겼다. "이 API 왜 이렇게 설계했지?" 하고 3개월 전 일지를 열었는데, 정확히 그날 "A 방식은 성능 이슈가 있어서 B로 변경" 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게 진짜 유용했다. 코드에는 what은 있지만 why는 없는 경우가 많다. 커밋 메시지로는 한계가 있고. 업무 일지가 그 why를 기록해준다.

성과 면담이 편해졌다

2025년 상반기 면담. 이번에는 3시간이 아니라 20분 만에 정리가 끝났다. 일지를 날짜별로 훑으면서 주요 작업만 추리면 되니까. "1분기에 인증 시스템 리팩토링 했고, 2분기에 결제 모듈 연동했습니다" 이게 아니라 "1월 15일에 인증 리팩토링 시작해서 2월 3일에 완료, 토큰 갱신 버그 3건 수정" 같은 구체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

팀장님 반응이 "오 구체적이네" 였다. (사실 그냥 일지 읽은 거다.)

예상 못한 효과: 감정 기록

업무 일지에 가끔 감정을 적을 때가 있다. "막힌 것" 칸에 "기술적 문제보다 커뮤니케이션이 답답" 같은 거. 나중에 이걸 돌아보면 패턴이 보인다.

특정 프로젝트할 때 유독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든지, 특정 사람과 일할 때 에너지가 떨어진다든지. 이걸 인식하는 게 중요한데, 매일 살다 보면 잘 모른다. 한 달 치를 모아서 보면 선명해진다.

3월에 한 프로젝트에서 "막힌 것" 칸에 연속 8일 동안 커뮤니케이션 관련 내용이 적혀 있는 걸 보고 "이건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팀장님한테 말씀드렸고 프로세스가 약간 바뀌었다.

실패한 부분도 있다

일지를 매일 쓰겠다고 했지만 빠진 날이 45일이다. 대부분 야근이 심한 날이거나 금요일. 야근하고 퇴근할 때 일지 쓸 기운이 없다. 금요일은 "한 주가 끝났다"는 해방감에 까먹는다.

그리고 일지를 너무 형식적으로 쓸 때가 있다. "API 개발 진행" 같은 한 줄. 이런 건 나중에 봐도 의미가 없다. 뭔 API인지, 어디까지 했는지가 없으니까.

도구는 뭘 쓰는가

Notion이다. 처음엔 그냥 텍스트 파일이었는데, 검색이 안 돼서 Notion으로 옮겼다. 데이터베이스 뷰로 만들어서 날짜별로 정렬하고, 태그로 프로젝트별 필터링을 건다.

Obsidian도 써봤는데 나한테는 Notion이 낫다. 회사 맥에서도 집 맥에서도 폰에서도 볼 수 있으니까. 근데 솔직히 도구는 중요하지 않다. 메모장이어도 된다. 꾸준히 쓰는 게 중요하다.

1년 넘게 쓰고 나서

업무 일지가 인생을 바꿨다, 같은 말은 하지 않겠다. 근데 확실히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선명해졌다. 한 주를 돌아볼 때 "이번 주 뭐 했지?" 가 아니라 "이번 주에 이걸 했고 저게 막혀 있다" 가 된다.

오늘도 퇴근 전에 쓸 거다. 7분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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