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 2년 차 솔직한 고백
재택근무가 천국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복잡했다
판타지는 이랬다
재택근무 시작 전, 상상은 이랬다. 9시에 일어나서 여유롭게 커피 내리고, 편한 옷으로 코딩하다가, 5시 반에 칼퇴하면서 "좋은 하루였다" 혼잣말하기. 처음 3개월은 정말 그랬다. 매일 천국. 출퇴근 왕복 2시간이 사라지니까 인생이 여유로웠다.
2년이 지난 지금, 고백할 게 있다.
일과 생활의 경계가 사라진다
가장 큰 문제가 이거다. 사무실에서는 퇴근하면 물리적으로 일에서 분리된다. 엘리베이터 타고 건물 나서는 순간 스위치가 꺼진다. 재택에서는 내 책상이 곧 사무실이다. 밤 10시에 슬랙 알림 오면 "어차피 여기 있으니까" 하면서 노트북을 연다.
"잠깐만 확인하자"가 1시간이 되고, 기분이 찝찝해서 결국 처리하고 만다. 출퇴근 시간은 아꼈는데, 총 근무 시간은 오히려 늘었다는 아이러니.
6개월쯤 지나서야 규칙을 세웠다. 오후 6시에 노트북을 덮으면 뭐가 와도 다음 날 처리. 슬랙 알림은 업무 시간 외에 끈다. 노트북을 작업실에만 두고 거실과 침실에서는 열지 않는다.
(이 규칙 없으면 재택이 24시간 근무가 된다. 과장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 경고다.)
외로움이 슬금슬금 온다
혼자 일하는 게 편하다고 생각했다. 집중력은 사무실보다 확실히 좋다. 옆에서 전화하는 소리, 회의실에서 새어나오는 웃음소리, "잠깐 이것 좀 봐줄래?"라는 탭 온 더 숄더가 없으니까.
근데 3~4개월쯤 지나면 이상한 외로움이 찾아온다. 커피 마시면서 동료랑 잡담하는 게 그리워진다. "이 버그 진짜 어이없지 않아?" 하면서 옆 사람이랑 웃는 그 순간들. 화상회의로 얼굴 보는 것과 실제로 옆에 앉아 있는 건 완전히 다르다. 카메라 너머의 연결은 한계가 있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은 카페에서 일하고, 한 달에 한 번은 사무실에 출근하는 걸로 균형을 맞추고 있다. 근데 이것도 정답은 아니다. 아직도 최적의 비율을 찾는 중이다.
걸음 수가 1500보로 떨어졌다
출퇴근이 없으면 걸음 수가 급감한다. 재택 전 하루 평균 7000보 걸었는데, 재택 후 1500보. 침대에서 책상까지 10발자국, 냉장고까지 15발자국, 소파까지 8발자국. 이게 하루의 전부였다.
6개월 뒤 건강검진에서 체중 5kg 증가, 콜레스테롤 경계선. 지금은 점심시간 30분 산책 필수, 아침에 러닝. 의식적으로 안 움직이면 하루 종일 앉아만 있게 된다. 재택근무의 숨겨진 비용이다.
좋은 점도 분명히 있다
불평만 한 것 같은데, 좋은 점도 확실하다. 깊이 집중해야 하는 작업을 할 때 생산성이 2배는 된다. 사무실의 소음, 갑작스러운 미팅, 동료의 "잠깐만"이 없으니까. 복잡한 리팩토링이나 아키텍처 설계는 재택 날에 집중적으로 한다.
가족과의 시간이 늘었다. 점심에 부모님이랑 밥 먹을 수 있고, 택배를 놓치지 않는다. 아이 있는 동료는 등하원을 직접 해줄 수 있다며 재택의 가치를 절대 안 포기한다고 했다. 이 가치는 돈으로 환산이 안 된다.
재택이 맞는 사람 따로 있다
2년간 관찰한 결과, 자기 관리 능력이 높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경계를 의식적으로 설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잘 맞다. 반대로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은 재택이 오히려 힘들 수 있다.
팀 동료 한 명은 재택 6개월 후에 자진해서 사무실 출근으로 전환했다. "집에서 혼자 일하면 미칠 것 같다"고 했다. 이건 개인 성향의 문제지, 능력 문제가 아니다.
재택을 다시 사무실로 바꾸겠냐고 물으면 아니다. 근데 "재택이 무조건 좋다"고도 안 하겠다. 자율에는 책임이 따르고, 그 책임을 관리하는 법을 배우는 데 최소 6개월은 걸린다. 그 6개월을 견딜 준비가 됐다면, 재택은 삶의 질을 올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