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 번아웃 겪어보니 이렇더라
6개월간의 번아웃과 회복,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
코드가 싫어질 줄은 몰랐다
4년 차 때였다. 아침에 눈 뜨면 회사 가기 싫다는 생각뿐이었다. 좋아하던 코딩이 고문처럼 느껴졌다. PR 리뷰가 쌓여도 손이 가지 않았고, 점심에 산책 나가면 돌아오기 싫었다. 주말에도 불안했다. 내일이면 다시 월요일이니까.
처음엔 그냥 피곤한 거라고 생각했다. 좀 쉬면 나아지겠지. 3개월이 지나도 안 나아졌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원인은 돌이켜보면 뻔했다
3개월 연속 야근으로 주 60시간을 일했다. 새벽 1시에 배포하고, 아침 9시에 다시 출근. 매주 새 기능을 출시해야 했고, 기술 부채는 쌓여만 갔다. 테스트 없이 프로덕션에 나가는 코드가 늘어났고, 그게 장애를 일으키면 새벽에 호출을 받았다.
핵심 팀원 두 명이 퇴사하면서 업무가 1.5배로 늘었다. 이 상황에서 "이 정도는 버텨야지", "다른 팀은 더 힘든데"라고 자신을 다그친 게 실수였다.
몸이 먼저 알려줬다
두통이 매일 왔다. 타이레놀을 출근 가방에 넣고 다녔다. 주말에도 슬랙 알림이 환청으로 들렸다. 안 울리는데 "띵"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핸드폰을 확인했다.
가장 심했을 때는 월요일 아침에 화장실에서 구토를 했다.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속이 뒤집혔다. 그제야 "이건 아니다"라고 인정했다. 인정하는 게 회복의 시작이었다.
(근데 인정하기까지가 진짜 오래 걸렸다. 한 달은 넘게 버텼던 것 같다. 몸이 경고하는데도 "좀만 더 하면 괜찮아질 거야" 하면서.)
팀장한테 말하는 게 제일 어려웠다
"지금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2주간 업무량을 조절할 수 있을까요?" 이 한마디 하는 데 일주일을 고민했다. 의외로 팀장은 "진작에 말하지 그랬어"라는 반응이었다. 대부분의 관리자는 팀원이 갑자기 터져서 퇴사하는 것보다 미리 조율하는 걸 선호한다.
그 다음으로 코드와 관련 없는 취미를 시작했다. 러닝을 선택했다. 처음엔 500미터도 못 뛰었다. 숨이 턱까지 찼다. 근데 한 달 후 5km를 뛰고 나면 머릿속이 깨끗해지는 걸 느꼈다. 뇌가 코드 이외의 것에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거다.
주말에는 노트북을 아예 열지 않는 규칙을 만들었다. 처음엔 불안했다. "장애 나면 어쩌지?" 근데 장애는 당번이 처리하면 되고, 내가 48시간 안 본다고 세상이 안 멈춘다. 처음에는 확인하고 싶은 충동이 계속 왔는데, 2주쯤 지나니까 그것도 좀 줄었다.
회복에 6개월이 걸렸다
빠른 해결책은 없었다. 업무량 조절하고, 운동 시작하고, 주말에 코드를 끊었다. 그래도 코딩이 다시 즐거워지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 회복은 점진적이다.
어느 날 갑자기 "오, 이 버그 잡는 거 재밌다"라고 느끼는 순간이 왔다. 그때 "아, 돌아왔구나" 싶었다.
번아웃 이후 달라진 것
지금은 야근을 해도 주 2회를 넘기지 않는다. 슬랙은 퇴근 후 알림을 끈다.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아니오"라고 말하는 법을 배운 거다. 예전엔 요청을 거절하면 무능해 보일까 봐 다 받았는데, 지금은 "다음 스프린트로 미루는 게 현실적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감당 못할 양을 수락하고 퀄리티 떨어지는 게 진짜 무책임한 거다. 거절하는 게 무책임한 게 아니라.
동료가 번아웃일 때
번아웃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이제는 팀원의 신호를 알아볼 수 있다. 평소 활발한 사람이 갑자기 조용해지거나, PR 리뷰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거나, 회의에서 멍하니 있는 모습이 보이면 먼저 커피 한잔 제안한다. "요즘 어때?"라는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큰 위안이 된다.
근데 번아웃은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가 좀 어렵다. 나도 남이 "번아웃이에요"라고 했을 때 "좀 쉬면 되지 않나?" 생각했었으니까. 직접 겪고 나서야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