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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vs 종이책, 독서 습관 비교

킨들을 산 뒤 독서량이 3배 늘었는데 기억에 남는 건 종이책이다

책을 읽고 싶은데 읽히지 않았다

2024년에 종이책을 11권 읽었다. 목표는 24권이었다. 절반도 못 채웠다. 문제는 의지가 아니라 환경이었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읽으려고 책을 가방에 넣는데 무겁다. 서서 타면 한 손으로 책을 펼쳐야 하는데 불편하다. 집에서 읽으려면 소파에 앉아야 하는데 소파에 앉으면 넷플릭스를 켜게 된다.

그래서 올해 1월에 킨들을 샀다. Kindle Paperwhite, 169,000원. (정확히는 중고로 138,000원에 샀다.)

킨들이 가져온 변화

확실히 읽는 양이 늘었다. 1월부터 7월까지 31권을 읽었다. 작년 같은 기간에 7권이었으니까 4배 이상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가볍다. 한 손에 들린다. 지하철에서 서서 읽을 수 있다. 잠들기 전에 침대에서 읽어도 눈이 덜 피로하다. (e-ink 화면이라 블루라이트가 거의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음 책"이 바로 있다. 종이책은 한 권 읽으면 서점에 가거나 배송을 기다려야 하는데, 킨들은 3초면 새 책을 다운받는다.

근데 뭔가 다르다

31권을 읽었는데, 지금 기억나는 내용이 얼마나 되냐 하면 좀 창피하다. 제목을 보면 "아 그거 읽었지" 하는데 핵심 내용이 뭐였는지 설명하라면 절반은 못 한다.

반면에 작년에 종이책으로 읽은 11권 중에 3~4권은 지금도 내용이 선명하다. 밑줄 친 부분이 떠오르고, 어떤 페이지에서 인상 깊었는지도 기억난다.

왜 그런 걸까. 내 가설은 이렇다. 킨들로 읽을 때는 "소비" 모드이고, 종이책으로 읽을 때는 "몰입" 모드다. 킨들은 너무 편해서 빨리 읽게 된다. 멈추고 생각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종이책은 물리적으로 느리다. 페이지를 넘기는 동작, 밑줄을 긋는 행위가 속도를 늦추고 그 과정에서 기억이 남는 것 같다.

장르에 따라 다르다

킨들에 적합한 장르가 있고 아닌 게 있다.

킨들이 좋은 것: 소설, 에세이, 자기계발서.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는 책. 밑줄 치고 싶은 부분도 하이라이트 기능으로 충분하다.

종이가 좋은 것: 기술서, 참고서, 그림이 많은 책. 기술서를 킨들로 읽으면 코드 블록이 작게 나와서 눈이 아프다. 그리고 "3장의 그 부분"을 다시 찾으려면 종이책은 대충 위치가 기억나는데 킨들은 검색을 해야 한다.

올해 읽은 31권 중에 기술서가 4권 있었는데, 솔직히 킨들로 읽은 기술서는 별로였다. 코드를 직접 따라 치면서 읽어야 하는데 킨들 화면과 노트북 화면을 번갈아 보는 게 불편했다.

비용 비교

킨들 전자책은 종이책보다 20~40% 싸다. 7개월 동안 전자책에 쓴 돈: 187,300원. 같은 책을 종이로 샀으면 대략 290,000원 정도. 차이가 102,700원이니까 킨들 기기값은 이미 뽑았다.

근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킨들이 편하니까 충동구매가 늘었다. "이거 재밌겠다" 하고 원클릭으로 사버린 책이 8권이나 있다. 그중 3권은 아직 안 읽었다. 종이책이었으면 서점까지 가야 하니까 이런 충동구매가 줄었을 거다.

1년 실험의 중간 결론

지금은 병행 중이다. 소설이나 가벼운 책은 킨들, 기술서나 천천히 읽고 싶은 책은 종이. 이게 나한테는 가장 맞다.

독서량만 보면 킨들이 압도적이다. 근데 "읽었다"와 "남았다"는 다른 거다. 100권을 읽고 10권이 남는 것과, 30권을 읽고 10권이 남는 건 결과적으로 같다. 어느 쪽이 더 가치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올해 목표 48권은 넘을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12월에 돌아봤을 때 기억나는 책이 몇 권일지가 진짜 중요한 숫자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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