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데스크 셋업 변천사
물건이 줄어들수록 생산성이 올라갔다는, 반은 맞고 반은 거짓인 이야기
1년 전 내 책상 사진을 봤다
클라우드 사진에서 1년 전 책상 사진이 떴다. 모니터 2개, 키보드 2개(하나는 안 씀), 마우스 옆에 마우스패드 2장(왜?), 커피잔 3개, 이어폰, 핸드크림, 포스트잇 뭉치, 충전 케이블 5개, 간식 봉지. 솔직히 창피했다. "나 이렇게 살았나?"
그래서 미니멀 데스크 셋업 여정을 시작했다. (사실 여자친구가 "이거 좀 치워" 해서.)
1단계: 필요 없는 걸 빼는 과정
모니터를 2개에서 1개로 줄였다. 이게 가장 논란 있는 결정이었다. "듀얼 모니터 없으면 개발 못 한다"는 사람이 많은데, 솔직히 2주 지나니까 적응됐다. macOS의 가상 데스크톱이나 윈도우의 스냅 기능으로 충분했다. 오히려 한 화면에 집중하니까 멀티태스킹(이라 쓰고 주의력 분산이라 읽는다)이 줄었다.
안 쓰는 키보드, 여분의 마우스패드, 간식, 커피잔을 치웠다. 충전 케이블은 5개에서 1개로. USB-C 허브 하나에 다 꽂았다. 이것만으로 책상 위 물건이 절반으로 줄었다.
2단계: 남은 것들의 자리 정하기
미니멀의 핵심은 "물건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남은 물건의 자리를 정하는 것"이라고 어디서 읽었다. 그래서 규칙을 정했다. 모니터 왼쪽에 노트북 스탠드, 오른쪽에 물병. 키보드 앞에 작은 노트 하나. 나머지는 서랍에.
케이블 관리가 가장 어려웠다. 케이블 트레이를 사서 책상 아래에 달았는데, 설치하는 데 1시간 40분 걸렸다. 벽 쪽 콘센트에서 책상까지 오는 멀티탭 선이 보기 싫어서 케이블 커버도 샀다. 이 케이블 정리에만 47,000원을 썼다.
지금 내 데스크 위에 있는 것
- 27인치 모니터 (모니터 암에 장착)
- 맥북 프로 (클램쉘 모드, 세로 스탠드)
- 키보드 (한성 GK898B)
- 마우스 (로지텍 MX Master 3)
- 물병
- 데스크 매트
끝이다. 6개. 전에는 15개가 넘었으니까 10개 넘게 줄인 거다.
생산성이 올라갔다는 건 반은 거짓말
"미니멀 데스크 = 생산성 향상"이라는 공식을 기대했다. 솔직히, 코딩 속도가 빨라지지는 않았다. 당연한 거다. 책상 위에 물건이 적다고 알고리즘이 갑자기 떠오르지는 않는다.
대신 "시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줄었다. 전에는 책상 앞에 앉으면 커피잔 치우고, 포스트잇 정리하고, 케이블 꼬인 거 풀고, 이러다 10분이 지났다. 지금은 앉으면 바로 모니터 켜고 시작한다. 하루 10분이면 월 220분, 약 3시간 40분.
그리고 심리적인 효과가 있다. 깔끔한 공간에 앉으면 머리도 좀 맑은 느낌이 든다. 플라시보일 수 있다. 근데 플라시보도 효과가 있으면 효과 아닌가.
돈이 좀 들었다
미니멀 셋업을 만드는 데 쓴 돈: 모니터 암 89,000원, USB-C 허브 62,000원, 케이블 트레이 + 커버 47,000원, 데스크 매트 35,000원, 노트북 스탠드 28,000원. 총 261,000원.
"물건을 줄이겠다면서 물건을 샀다"는 아이러니. 근데 이건 소비가 아니라 교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케이블 5개 대신 허브 1개. 물건 수는 줄었으니까 미니멀 맞다. (맞나?)
유지하는 게 어렵다
셋업을 만드는 건 하루면 된다. 유지하는 건 매일의 싸움이다. 택배 받으면 박스가 쌓이고, 간식 먹으면 봉지가 남고, 케이블 하나 더 꽂으면 어느새 원래대로 돌아간다.
"퇴근 전 1분 정리" 규칙을 만들었다. 퇴근할 때 책상 위에 6개 외의 물건이 있으면 제자리에 넣는다. 1분이면 된다. 이게 6개월 된 지금도 유지 중인 유일한 규칙이다. 나머지 규칙들은 다 깨졌다.
미니멀 데스크가 인생을 바꾸진 않는다. 근데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이 조금 달라진다. 그 "조금"이 매일 쌓이면 꽤 된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