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경제적 해자 만들기
워런 버핏의 경제적 해자 개념을 개인 커리어에 적용해봤다
이 생각은 주식 공부하다가 시작됐다
워런 버핏이 말하는 "경제적 해자(moat)"라는 개념이 있다. 기업이 경쟁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지속 가능한 경쟁 우위. 코카콜라의 브랜드, 애플의 생태계, 아마존의 물류 네트워크 같은 것들.
주식 공부를 하면서 이 개념을 곱씹고 있는데,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한테도 해자가 있나?" 5년 차 개발자로서 나를 대체하기 어렵게 만드는 게 뭔가. 솔직히 바로 답이 안 나왔다. (그게 좀 무서웠다.)
개발자한테 해자가 될 수 있는 것들
첫 번째는 기술 전문성이다. 근데 기술은 빠르게 변한다. React를 아무리 잘해도 5년 뒤에 React가 여전히 메인인지 모른다. jQuery의 해자가 사라진 것처럼. 기술 전문성은 해자이긴 한데 폭이 좁고 쉽게 메워진다.
두 번째는 도메인 지식. 핀테크, 헬스케어, 이커머스 같은 특정 산업에 대한 이해. 이건 좀 더 단단한 해자다. 도메인 지식은 코드로 학습할 수 없고, 몇 년간의 경험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네트워크. 아는 사람이 많고, 그 사람들이 나를 신뢰하는 것. 이직할 때 레퍼럴을 받을 수 있는 관계. 이건 시간이 가장 많이 걸리지만 가장 견고한 해자다.
내 해자를 점검해봤다
기술 전문성: React/Next.js는 상위 20% 정도라고 자부한다. 근데 이런 사람이 한국에만 수천 명은 있을 거다. 해자로는 약하다.
도메인 지식: 이커머스 도메인에서 3년 일했다. 주문 처리, 재고 관리, 결제 연동에 대한 이해가 있다. 근데 "깊은" 수준인가? 솔직히 PG사 연동할 때마다 문서를 다시 본다. 중간 정도.
네트워크: 전 직장 동료 중에 연락하는 사람이 8명.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아는 사람이 15명 정도. 나를 추천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3명. (3명이 많은 건지 적은 건지 잘 모르겠다.)
해자를 넓히려면 뭘 해야 하나
도메인 지식을 더 깊게 파는 게 가장 현실적이라고 판단했다. 이커머스에서 "결제"라는 세부 영역에 집중하기로 했다. PG 연동, 정산 시스템, 해외 결제, 구독 결제. 이 분야를 깊게 파면 "이커머스 결제 전문 개발자"라는 포지션이 생긴다.
근데 이게 맞는 선택인지 아직 확신이 없다. 너무 좁게 가면 시장 자체가 작아질 리스크가 있다. PG사가 통합되거나, 결제 시스템이 표준화되면 이 전문성의 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다.
해자는 하루아침에 안 만들어진다
버핏이 투자하는 기업들의 해자도 수십 년에 걸쳐 만들어진 거다. 개인도 마찬가지. 1년 안에 만들어지는 해자는 1년 안에 무너진다. 깊고 넓은 해자를 만들려면 꾸준함이 필요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매일 조금씩 파는 것 뿐이다. 이번 달에는 해외 결제 게이트웨이 연동 프로젝트를 맡았다. 거기서 배운 걸 정리해서 블로그에 쓰고, 관련 커뮤니티에 공유하고. 이게 해자가 되는 건지는 3년 뒤에나 알 수 있겠지만.
487,000원짜리 주식을 분석하다가 내 커리어를 분석하게 될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