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가든이라는 개념
완성된 글이 아닌 자라나는 메모를 공개하는 방식에 대한 생각
블로그와 뭐가 다른 건데
"디지털 가든"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냥 블로그 아닌가 싶었다. 근데 좀 다르다. 블로그는 완성된 글을 시간순으로 발행하는 거고, 디지털 가든은 아직 자라고 있는 메모를 공개하는 거다.
블로그 글은 발행하면 끝이다. 수정할 수 있지만 보통 안 한다. 디지털 가든의 메모는 계속 업데이트된다. 씨앗 단계(짧은 아이디어)에서 새싹(좀 더 정리된 메모), 나무(제대로 된 글)로 자란다.
이 개념을 알고 나서 "나도 해볼까" 싶었다.
시도해봤다
Obsidian으로 메모하던 걸 일부 공개하기로 했다. GitHub Pages에 Quartz라는 도구를 써서 Obsidian 볼트를 웹사이트로 변환했다. 설정하는 데 반나절 걸렸다.
67개의 메모를 공개했다. 상태를 씨앗/새싹/나무로 분류했다. 씨앗이 41개, 새싹이 19개, 나무가 7개. 대부분이 씨앗이다. 한 줄짜리 아이디어나 링크 모음 수준.
문제: 공개하기 민망한 수준의 메모
씨앗 단계의 메모가 이런 거다. "React Server Components의 streaming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정리 필요" 딱 한 줄. 이걸 공개한다고? 누가 이걸 보고 뭘 얻어가나?
근데 디지털 가든 철학은 이걸 괜찮다고 본다. 완벽하지 않아도 공유하는 과정에서 연결이 생기고 피드백이 온다는 거다. (근데 현실적으로 내 디지털 가든에 방문자가 하루 3명이라 피드백이 올 일이 없다.)
공개한 지 한 달 만에 씨앗 메모 중 11개를 비공개로 돌렸다. 너무 날것이어서 오히려 내 평판에 안 좋을 것 같았다.
예상 못 한 효과
공개 여부와 관계없이, "이 메모는 언젠가 공개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쓰니까 메모 품질이 올라갔다. 전에는 "ㅇㅇ 이거 나중에 보기"처럼 쓰던 걸, 최소한 문장으로 쓰게 됐다. 미래의 나도 이해할 수 있게.
그리고 메모 사이의 연결을 의식적으로 만들게 됐다. "이 개념은 저 메모랑 관련있다"는 링크를 걸면서 정리하니까 흩어져 있던 지식이 구조를 갖기 시작했다.
3개월 후에 새싹 메모 중 4개가 나무로 올라갔다. 이 중 2개는 블로그 글로 발행했다. 디지털 가든이 블로그 글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 셈이다.
블로그와 공존할 수 있을까
지금은 블로그와 디지털 가든을 따로 운영 중이다. 블로그에는 정제된 글을, 가든에는 작업 중인 메모를. 근데 둘 다 관리하는 게 번거롭다. 시간이 지나면 하나로 합치거나 하나를 버릴 것 같다.
사실은 디지털 가든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방문자가 아니라 본인이다. 공개 여부보다 "성장하는 메모"라는 사고방식이 핵심이다. 한 번 쓰고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계속 가꾸는 거. 그래서 "가든"이라는 비유가 적절하다.
방문자가 3명이라도 상관없다. 가장 자주 방문하는 사람은 나니까. 근데 좀 더 사람이 오면 좋겠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