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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연말 회고를 쓰는 법

매년 회고를 쓰면서 느낀 것: 대부분의 회고는 자기 합리화에 가깝다

올해도 회고 시즌이 왔다

12월이 되면 타임라인에 회고글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올해 가장 잘한 일", "내년 목표", "성장한 점". 나도 매년 쓴다. 3년째 쓰고 있다. 근데 올해는 좀 다르게 써보려고 한다. 작년 회고를 다시 읽어봤는데 부끄러웠다. (솔직히 오글거렸다.)

작년 회고에서 뭐라고 썼는지 보자

"올해는 TypeScript를 깊이 있게 공부해서 팀의 코드 품질 향상에 기여했다." 사실은? TypeScript 관련 책 한 권 사놓고 3장까지 읽었다. 나머지는 필요할 때 구글링으로 해결했다. "깊이 있게 공부"가 아니라 "필요한 만큼만 찾아봤다"가 정확한 표현이다.

"사이드 프로젝트 2개를 완성했다." 하나는 완성이 맞다. 근데 사용자가 나 포함 3명이다. 나머지 하나는 레포만 만들고 README를 쓴 게 전부다. 커밋 기록을 보면 마지막 커밋이 3월이다.

왜 회고가 자기 합리화가 되는 걸까

회고를 쓸 때 무의식적으로 하는 게 있다. "잘한 것"을 먼저 쓰고, "못한 것"은 최소화하거나 포장한다. "시간이 부족해서"라고 쓰지만, 사실은 넷플릭스를 너무 많이 본 거다. "우선순위를 조정했다"고 쓰지만, 사실은 귀찮아서 안 한 거다.

공개적으로 글을 올리니까 더 그렇다. 다른 사람이 읽을 걸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포장하게 된다. "난 올해 이만큼 성장했어요"를 보여주고 싶은 욕구.

올해 진짜로 솔직하게 써보면

잘한 것: 출근을 거의 안 빠졌다. (이게 성과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작년에 결근이 7일이었으니까 발전이긴 하다.)

못한 것이 더 많다. 1월에 세운 목표 5개 중에 달성한 건 1.5개. 알고리즘 문제 매일 풀기? 2월 셋째 주에 포기했다. 영어 공부? Duolingo 스트릭이 17일에서 끊겼다. 블로그 주 1회 작성? 7월부터 10월까지 글을 하나도 안 썼다.

솔직한 회고를 쓰려면 이렇게 하면 된다

첫째, 날짜가 있는 사실만 쓴다. "열심히 공부했다" 대신 "3월에 React 19 문서를 읽었고, 그 내용으로 팀 세미나를 한 번 했다." 구체적인 날짜와 횟수. 감정이나 평가 없이.

둘째, 수치를 넣는다. "블로그를 꾸준히 썼다" 대신 "블로그에 글을 14편 작성했다. 목표는 52편이었다. 달성률 26.9%." 숫자는 거짓말을 못 한다.

셋째, 후회를 구체적으로 쓴다. "아쉬운 점이 있었다" 같은 애매한 표현 말고, "8월에 이직 제안을 받았는데 면접도 안 보고 거절한 게 아직도 궁금하다" 같은 구체적인 후회.

회고의 진짜 목적은 뭘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다.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는 거다. 성장했으면 좋겠지만 퇴보한 부분도 분명 있을 거다. 그걸 인정하는 게 회고의 시작이다.

올해 내 회고는 남들 보기에 멋지지 않을 거다. 근데 그게 맞다. 멋진 회고를 쓰는 게 목적이 아니라, 솔직한 회고를 쓰고 내년에 진짜로 뭘 바꿀 건지 정하는 게 목적이니까.

...라고 쓰면서도 이 글 자체가 "나는 솔직한 사람이다"라는 포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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