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vs 대기업, 3년 차의 고민
스타트업 2년, 대기업 1년을 경험한 후의 솔직한 비교
양쪽 다 해봤다
스타트업에서 2년, 대기업에서 1년. 둘 다 겪어보니 인터넷에 떠도는 비교글의 80%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스타트업은 "자유롭고 성장 빠르고 주인의식", 대기업은 "안정적이고 체계적이고 워라밸"이라는 깔끔한 이분법. 현실은 그렇게 깔끔하지 않다.
스타트업에서도 야근 압박 있었고, 대기업에서도 주말 출근 있었다. 양쪽의 장단점을 솔직하게 써본다.
스타트업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
프론트엔드로 입사했는데 3개월 뒤에는 백엔드 API를 짜고 있었고, 6개월 뒤에는 AWS EC2 세팅이랑 GitHub Actions CI/CD까지 만지고 있었다. 심지어 GA 분석까지. "그건 제 업무가 아닌데요"는 10명짜리 팀에서 통하지 않았다.
근데 그 덕에 풀스택에 가까운 시야를 얻었다. 프론트엔드 코드 짤 때 "이걸 백엔드에서 어떻게 처리해야 효율적일까?"를 동시에 고민할 수 있게 됐다. 이 넓은 시야가 대기업 와서도 큰 자산이 됐다.
문제는 체계의 부재였다. 코드 리뷰 없이 바로 프로덕션에 배포한 적도 있고, 테스트 코드 작성할 시간이 주어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일단 출시하고 나중에 고치자"가 팀 모토였는데, "나중"은 안 왔다.
(솔직히 그때 내가 짠 코드 중 일부는 지금도 생각하면 좀 끔찍하다. 에러 핸들링이라고는 console.log 하나 찍어놓은 게 전부인 코드가 프로덕션에 나갔었다.)
대기업에 와서 받은 충격
이직하고 첫 달이 충격이었다. PR 올리면 리뷰어 3명이 꼼꼼하게 코멘트를 달아줬다. 변수명 하나, 타입 정의 하나까지. 코드 컨벤션 문서가 100페이지. 배포 프로세스가 5단계 — 스테이징, QA, 카나리 배포, 모니터링, 정식 배포.
처음엔 "느리다"고 생각했는데, 한 달 지나니 "안전하다"로 바뀌었다. 스타트업에서 새벽 2시에 핫픽스 배포하던 트라우마가 있어서, 이 안전함이 감사했다.
근데 속도 차이는 확실하다. 스타트업에서 하루면 끝낼 기능이 대기업에서 2주 걸렸다. 일을 적게 하는 게 아니라 과정이 많은 거다. 기획 리뷰, 디자인 리뷰, 코드 리뷰, QA. 이 과정이 품질을 높여주는 건 맞지만, 가끔 답답하다.
성장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
스타트업은 "넓이"다. 못해본 걸 해야 하는 상황이 강제로 주어지고, 서바이벌 스킬이 생긴다. 대기업은 "깊이"다. 성능 최적화 한 가지를 3개월간 연구하거나, 대규모 트래픽 처리 노하우를 쌓을 수 있다. 스타트업에선 이런 여유가 없었다.
둘 다 가치 있는 성장이다. 자기가 지금 어디가 필요한지가 중요하다. 넓이와 깊이를 번갈아 쌓아가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돈 얘기를 하자면
솔직히 연봉은 대기업이 40% 정도 높았다. 복지도 비교 불가. 식비, 교육비, 건강검진, 헬스장. 스타트업에서 "우리 문화가 좋잖아"로 퉁치던 것들이 대기업에서는 제도로 보장됐다.
스톡옵션은 받았지만 회사가 아직 상장 전이라 현금화 불가. 3년 지난 지금도 종이 위의 숫자다. 스톡옵션은 로또와 비슷하다. 대박 날 수도 있지만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다. 확실한 현금이 좋다면 대기업이 현실적이다.
문화가 제일 달랐다
스타트업에서는 CTO랑 매일 점심을 먹었다. "이거 바꾸면 어때요?" 하면 "좋아, 해봐"가 바로 왔다. 의사결정이 빠르고 내 의견이 바로 반영됐다.
대기업에서는 팀장, 파트장, 실장, 본부장으로 이어지는 결재 라인. 내 제안이 채택되기까지 한 달 걸린 적도 있다. "좋은 아이디어인데 다음 분기 로드맵에 반영하겠습니다"를 여러 번 들었다.
지금의 선택
3년 차인 지금은 대기업에 남아 있다. 깊이 있는 성장이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해서다. 5년 차쯤 되면 다시 스타트업에서 리드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근데 그때 가서 또 달라질 수 있다.
정답은 없다. "스타트업은 무조건 좋다"도, "대기업이 무조건 낫다"도 둘 다 틀렸다. 남이 좋다고 하는 곳 말고, 내가 지금 필요한 곳으로 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