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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공개 문화에 대한 생각

동료의 연봉을 알게 됐을 때의 복잡한 감정과 투명성에 대한 고민

우연히 동료의 연봉을 알게 됐다

회식 자리에서 동료가 술에 취해서 연봉을 말했다. 나보다 같은 직급인데 800만 원 더 받고 있었다. 이유는 중도 입사 시 네고를 잘 한 것 같다. 그날 밤 집에 가면서 기분이 묘했다. 화가 나는 건 아닌데, 뭔가 허무했다. (사실 좀 화가 났다.)

"같은 일을 하는데 왜 다르지?" 이 생각이 일주일 동안 떠나질 않았다.

한국은 연봉을 숨기는 문화다

"얼마 받아?"라는 질문은 한국에서 실례다. 가족한테도 정확한 숫자를 안 말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에서는 "연봉은 대외비"라는 조항이 근로계약서에 있다. 법적 효력이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 것 같다. 회사 입장에서는 연봉 차이로 인한 불만을 관리하기 싫다. 직원 입장에서는 더 받는 사람은 시기받을까 봐, 덜 받는 사람은 창피해서 말을 안 한다.

결국 모든 사람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나만 적게 받는 건 아니겠지"라고 자기를 위안한다.

해외는 좀 다르다

미국 일부 회사들은 연봉 테이블을 공개한다. Buffer라는 회사는 전 직원 연봉을 웹사이트에 올려놓는다. GitLab도 비슷하다. "이 직급, 이 지역이면 이 범위의 연봉을 받는다"는 걸 투명하게 공개한다.

콜로라도 주는 법으로 채용 공고에 연봉 범위를 명시하게 했다. 캘리포니아도 비슷한 법이 생겼다. 유럽 EU도 급여 투명성 지침이 통과됐다.

근데 연봉 공개 문화가 만능은 아니다. Buffer에서도 초기에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왜 저 사람이 나보다 많이 받지?"라는 질문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내 경험에서 느낀 것들

그 동료의 연봉을 알고 나서 내가 한 일은 두 가지다.

첫째, 연봉 인상을 요청했다. "동료가 이만큼 받는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대신 내 성과를 정리해서 "시장 가치 대비 낮은 것 같다"는 논리로 이야기했다. 결과: 400만 원 인상. 800만 원 차이가 400만 원으로 줄었다. (나머지 400만 원이 좀 아깝긴 하다.)

둘째, 시장 연봉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개발자 커뮤니티, 연봉 공유 스프레드시트, 블라인드. 내 연봉이 시장 대비 어디쯤인지 파악하려고 했다. 정보를 모으니까 불안감이 줄어들었다. 비교 대상이 없을 때 가장 불안하다.

공개가 좋은 건지 모르겠다

머리로는 투명성이 좋다고 생각한다. 같은 일에 같은 보상을 받는 게 공정하니까. 연봉 차별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공개라는 연구도 있다.

근데 감정적으로는 복잡하다. 솔직히, 내가 팀에서 가장 많이 받고 있으면 공개가 불편할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거다. 반대로 가장 적게 받고 있으면 자존감이 떨어질 수 있다.

그리고 연봉이 같은 직급 내에서도 다른 건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경력, 스킬셋, 네고 능력, 입사 시기. 이런 변수를 다 무시하고 "같은 직급이면 같은 연봉"으로 맞추면 오히려 동기부여가 떨어질 수도 있다.

개발자 커뮤니티의 연봉 공유 문화

블라인드나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익명으로 연봉을 공유하는 건 꽤 퍼져 있다. "네카라쿠배 5년 차 BE 7,200"이런 식으로. 이게 연봉 테이블의 비공식 버전인 셈이다.

유용하긴 하다. 이직할 때 "내가 적정하게 받고 있는 건가"를 확인할 수 있으니까. 근데 문제도 있다. 자기보다 많이 받는 사람의 글만 눈에 들어온다.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는 사람은 자기 연봉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 사람이다. 편향된 샘플이다.

내가 바라는 건

완전한 공개보다는 "범위의 투명성"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직급은 이 범위 안에서 결정됩니다"를 회사가 공개하는 거다. 그러면 내가 범위 안에서 어디쯤인지 알 수 있고, 범위 아래에 있으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이런 제도가 없다. 생길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나는 내 시장 가치를 스스로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1년에 한 번은 이직 시장을 둘러본다. 진짜 이직할 게 아니어도, 내 가치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그 동료와는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 연봉 차이를 알고 나서 한동안 미묘했는데, 결국 그건 회사의 문제이지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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